영화 <하우스메이드> 리뷰
햇살이 비치는 초호화 저택, 완벽한 미소를 짓는 부부, 그리고 그곳에 새로 들어온 하우스메이드 밀리. 그 모든 것을 완벽하지만 집안의 스산한 분위기는 묘하게 불쾌하다. 이 완벽한 가정의 틈새에는 어떤 먼지가 쌓여있을까? 밀리가 빗자루를 들고 치워야 할 것은 카펫 위의 먼지가 아니라 이 집의 진짜 '진실'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숨겨진 진실. 원작소설의 압도적인 흥행에 힘입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이미 시즌 2 제작까지 확정 지으며 새로운 스릴러 시리즈의 탄생을 알린 영화 <하우스메이드>는 2026년 1월 28일 개봉했다.
밀리는 과거를 숨긴 채 완벽한 저택의 가정부로 들어가게 된다. 마음 좋은 안주인 니나, 작은 다락방, 안정된 급여까지 그녀가 꿈꾸던 평온한 삶 그 자체다. 하지만 그때부터 안주인 니나의 변덕은 상상을 초월한다. 밀리를 향한 날 선 태도와 잘못된 일을 지시해 두고 멋대로 했다는 모함까지. 반면, 앤드루는 그런 아내의 히스테리를 견뎌내는 모범적인 남편의 정석이다. 그런 모습을 이해하는 앤드루와 엮이게 되는데..
밀리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가정부로서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한없이 다정했던 니나가 갑자기 돌변하여 자신을 모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 않은 실수를 지적하고 밀리를 향해 날 선 태도를 보이며 밀리를 당황케 만들었다. 반면, 남편 앤드루는 그런 아내의 히스테리를 묵묵히 견뎌내며 오히려 밀리에게 아내가 조금 아파서 그렇다는 위로를 건넨다. 밀리는 그 다정함에 의지하며 앤드루를 향한 연민을 키워간다. 주변에서는 니나가 자신의 딸을 헤쳤다는 소문까지 들려오자 니나에 대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평온해 보이던 저택 곳곳에는 기묘한 위화감이 서려있었다. 밀리의 방인 다락방에는 창문이 없었고 튼튼한 문에는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서만 잠글 수 있는 기묘한 열쇠장치가 달려있었다. 잘 열리지 않는 방문이 조금은 불안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방문에 대한 의심보다 니나의 광기가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앤드루가 보여주는 완벽한 다정함은 못살게 구는 니나에게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신호는 정교하게 설계된 방에 갇히는 순간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자신이 가여운 남편을 돕는 구원자라고 믿었던 달콤한 착각이 그녀를 지옥에 빠뜨린 것이다.
그의 다정함이 덫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한다. 이 영화의 서사는 3단계에 걸친 치밀한 구조를 통해 관객의 심리를 좌우한다. 초반부는 뻔한 클리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반전은 꽤 매력 있는 미끼로 사용된다.
1단계 : 욕망과 질투의 결투극
첫 번째 단계는 완벽해 보이는 안주인 니나와 그 자리를 갈망하는 가정부 밀리의 구도의 대립에 집중한다.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분 상승 욕망'과 '질투'를 동력으로 삼으며 서로를 의심하고 깎아내리며 한 남자를 둔 결투극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관객은 이때까지만 해도 밀리가 니나를 밀어내고 안주인이 되길, 혹은 니나가 밀리를 내쫓길 기대 하며 이들의 신경전에 몰입한다.
2단계 : 설계된 비극과 구도의 급변
하지만 중반 이후 실체가 드러나며 구도가 급변한다. 두 여자의 대결은 사실 설계된 것이었다. 니나는 그가 구축한 완벽한 감옥에서 빠져나기 위해 밀리를 이용하여 설계된 연극을 준비한 것이다. 앤드루는 자신의 완벽한 평판을 이용하여 니나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내로 만들었고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니나는 이 완벽한 감옥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를 거듭했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대체할 '사람'을 찾게 된다. 바로, 어두운 과거가 있고 아무것도 잃을 것 없는 밀리를 이용해 자신이 탈출할 연극을 준비한 것이다.
3단계 : 완전한 붕괴 그리고 연대
그렇게 밀리는 니나의 자리에 '대체'된다. 자신의 통제에 따르면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은 사실 허황된 말에 가깝다. 그렇기에 복수는 총성 한발 없이도 처절하게 이루어진다. 그가 구축해 놓은 평판을 직접적으로 무너뜨리기보다는 그가 아내와 밀리에게 가했던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지"라는 말을 돌려준다. 완벽한 신사의 가면이 벗겨지고 추악한 짐승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이제 그녀는 완벽한 가정 뒤의 숨은 폭력을 찾아내어 처단하는 가정 폭력 전담 하우스 메이드가 되는 걸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킬링타임용 스릴러가 아니라 현대적인 잔혹동화라는 것이다. 고전 스릴러들이 경찰이 들이다치 거나 지나가던 행인이 구해주는 수동적인 형식이었다면 <하우스메이드>는 다르다. 그녀들은 운명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앤드루가 짜놓은 가스라이팅의 미로 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용하지만 끝내 손을 잡으며 문을 열고 나온다. 죽음보다 더한 사회적 매장을 선택한 그녀들의 복수는 우아하면서도 잔인하다. 영화가 끝나고 밀리가 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다른 집의 초인종을 누를 때, 우리는 기분 좋은 전율을 느낀다. 폭력의 그늘에 갇힌 누군가에게 그녀는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구원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정폭력은 벗어나기 어려운 잔인한 전쟁이다. 가해자나 피해자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만 끝이난 다고 할 정도로. 관계 속에서 서서히 구축되는 감옥, 그리고 그 감옥에서 도망치려다 등장인물들은 결국 폭력의 구조 자체를 되돌려준다. 이 결말은 다소 뻔하게 보이지만 차갑고 명확한 현실을 마주하며 결코 뻔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렇게 무거워질 수 있는 스릴러에 장르적 쾌감을 정교하게 녹여낸다. 도덕의 회색 지대에서 피어나는 아이러니한 카타르시스가 이 작품이 복수극이 아닌 현대의 잔혹동화를 완성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