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국인 친구> 리뷰
어쩌면 두 사람은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거짓말처럼 시작된 이 운명 같은 만남은 마치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을 끈끈하게 엮었다. 빔 밴더스 감독의 1977년작 <미국인 친구>는 거짓말의 상징 '리플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만큼 감독이 해석하는 '리플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의 주변부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다소 독특한 구성으로 관객의 시선을 감독이 의도한 방향으로 이끈다.
부유한 미국인 톰 리플리. 그는 미술품 위조 사기를 하며 경매 도중 액자 제작 전문가 조나단 짐머맨을 소개받는다. 하지만 조나단은 경멸하듯 리플리의 악수를 거부했고, 그 단호함에 리플리의 자존심에 금이간다. 그때 마침 프랑스 범죄자 라울 미노가 살인 청부를 제안해 오자, 시한부인 조나단을 추천한다. 리플리는 조나단의 병이 악화되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불안감이 커지는 조나단에게 미노는 살인 청부의 대가로 거액을 제안하는데...
그 옹졸한 자존심에서 시작된 사소한 악의는 정교하게 평범함으로 짜여있던 요나단의 일상에 얇은 빗금을 긋는다. 성실하게 액자를 짜며 자신의 세계를 틀 안에 고정해 왔던 장인에게 다가온 '미국인 친구'는 그 틈새에 끼어들어 그의 삶을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했다. 리플리는 친구이기도 했지만 사기꾼이기도 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할 행동은 거리가 멀었다.
여기서 우리는 리플리라는 인물의 비겁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기 위해 타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죽음의 공포'를 노련하게 이용한다. 리플리는 결코 스스로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대신 조나단이라는 사람을 범죄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며, 조금씩 무너뜨린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고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수습하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오염된 영혼에게 건네는 그 도움은 구원이 아니라 족쇄였기 때문이다. 그가 뒤늦게 내민 손은 우정이 아닌 자신의 죄책감을 씻기 위한 이기적인 위안에 가깝다. 리플리의 수습은 오히려 비극의 바람을 더 거세게 몰고 올 뿐이었다.
가족을 지키겠다는 가장 ‘진짜’ 같은 명분을 위해 그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위조품으로 바꿔버리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남겨질 아내와 아이에게 가난 대신 안락함을 유산으로 남기겠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그를 가장 비열한 범죄자로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빗금이 가버린 유리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 틈사이로 밀려들어오는 비극의 바람은 식탁의 온기를 앗아간 대신, 의심이 자리 잡는다. 조나단이 거액의 대가로 가져온 것은 가족의 미래보장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게 만드는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뿐이다. 가족들은 고마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피 묻은 돈으로 연명하는 내일이 아니라, 비록 병약할지언정 정직하게 액자를 짜며 자신들을 바라봐 주던 '진짜 조나단'이었을 테니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자기 자신을 위조해 버린 남자의 질주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해변에 멈춰버렸다.
평범하지 않으면서 평범한 인생을 꿈꾼다는 것. 그것은 가짜의 삶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처절한 몸부림과도 같다. 옳고 그름은 늙는다고 자리 잡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플리는 이름마저 진짜로 둔갑한 것 같은 사기꾼이지만 누구보다 '진짜'를 갈망한다. 그는 진정으로 조나단을 '친구'로 여겼을까. 조나단은 가짜로 가득한 자신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져지는 '진실'이자, 자신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그는 유럽의 견고한 전통을 잠식하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과도 닮아 있다. 리플리는 직접적인 악의보다는 '효율'과 '자본'의 논리로 타인의 삶에 침투한다. 생각보다 다정하고 책임감 있는 얼굴로 다가와 조나단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그 세련된 유혹은 전통적인 장인 정신과 윤리가 자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얼마나 무력하게 침식당하는지를 보여준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라는 말을 이 영화를 통해 체감하게 된다. 빔벤더스는 리플리를 통해 전후 유럽에 상륙한 미국인의 본성을 서늘하게 비춘다. 대놓고 총을 겨루는 폭력이 아니라 효율과 자본이라는 논리로 침투하는 방식이다. 시스템은 언제나 달콤한 얼굴로 다가와 우리의 결핍을 위로하는 척하지만 표준화라는 비싼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조나단은 가족의 안위라는 표준화된 행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라는 원본을 훼손하며 리플리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결국 이 지독한 동행의 끝에서 리플리는 정신이 죽었고, 요나단은 육체가 죽었다. 정직하게 액자를 짜던 장인은 사라졌고, 그가 남긴 것은 피 묻은 돈과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을 위조된 희생뿐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해변에 멈춰버린 요나단의 차는 끝내 자신의 프레임을 되찾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