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 빌: 더 홀 블러디 어페어> 리뷰
킬빌은 많은 사람들에게 잔혹한 복수극이자 무술 영화의 집대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본 이 영화는 비뚤어진 사랑이자 피칠갑 로맨스다. 영화 <킬 빌: 더 홀 블러디 어페어>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20년 전 기획 단계에서부터 의도했던 '하나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복원해 낸 275분 분량의 무삭제 완전판이다. 아직까지 킬빌 3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개봉은 희소식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두 파트를 통합한 만큼 상영시간이 굉장히 길다. 하지만 길고 길었던 복수의 여정을 한 번에 휘몰아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특히 기존 1편의 하이라이트였던 '청엽정 전투'가 흑백의 장면이 전체 컬러로 나오고 아쉽게 잘라내야 했던 이야기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무엇보다 오렌 이시의 서사를 상세히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시퀀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이 영화는 이 압도적인 스케일과 장르적 미학이 눈에 띄지만 희한하게 결말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던 영화였는데, 다시 봐도 아쉬웠다. 스타일리시한 액션 영화를 로맨스로 마무리하다니.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두 남녀의 비틀린 애증으로 마무리한다. 피로 시작된 복수를 굳이 연애의 종말로 결말 지었어야 했을까. 빌이 너무 할아버지여서 더욱 납득이 가지 않았던 거 같다.
이름 모를 신부와 신랑, 그리고 그곳에 참석한 모두가 깔끔하게 죽었다. 텍사스 엘 파소의 작은 예배당을 가득 채운 핏자국이 그를 말해준다. 이 깔끔한 전멸은 무채색에서 시작됐지만 가장 원색적인 복수로 다시 시작된다. 4년의 코마상태에서 벗어난 후, 만반의 준비를 한 그녀는 Death List를 들고 그 대상을 죽여나가기 시작한다. 순서대로 제거해 가지만 영화는 그 순서대로 비추지 않는다. 왜 이 순서를 뒤섞어 놓았을까? 실제 제거의 첫 번째 대상은 오렌 이시였지만 영화에서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버니타 그린을 전면에 배치해 두었다. 액션의 규모를 키우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브라이드'라는 한 여자가 앞서 겪었던 일들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끝내 손에 쥐지 못한 평범한 일상에 대한 울분이다. 자신을 배신한 동료이자 자신이 가졌어야 할 미래를 대신 살아가고 있는 버니타 그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뒤이어 나오는 오렌 이시와의 화려한 혈투는 더욱 처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복수는 무언가를 되찾기 위함이 아니라 완벽한 끝을 향해 달리기 위함이다. 이미 4년이라는 시간은 지나버렸고 예배당에서의 비극으로 그녀가 꿈꿨던 평범한 행복은 복구 불가능한 폐허가 되었다. 그녀가 피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원흉은 제목으로 드러난다. '킬 빌'. 과거 '데들리 바이퍼' 암살단의 가장 치명적인 독사였던 '블랙 맘바'에게 이 복수의 리스트는 살생부이자 누군가를 향한 메시지다. 리스트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갈 때마다 영화의 공기 자체가 바뀌어 가며 그녀의 독기를 더한다. 영화의 전반부가 일본 사무라이 극이라면 중반부는 미국 서부극 그리고 끝은 홍콩 무협으로 끝을 맺는다. 일본의 검술과 홍콩의 권법을 넘나드는 '무술 세계 일주'를 견뎌내며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 빌이 가르친 방식대로 빌을 파괴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킬러로서의 모습, 그리고 무자비한 인간 병기로 거듭난다.
영화의 가장 큰 비판점이 되었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몇 년 전에 보았을 때, 이 영화에 대한 불편함은 서양인이 생각하는 동양인의 이미지에 대한 불쾌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아시아 액션의 집대성'이라는 찬사 아래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이 짙게 깔려 있다. 서양이 소비하기에 적합한 동양의 장점을 극대화한 판타지의 총집합체다. 영화에는 서양인이 소비하기에 적합한 동양의 ‘쿨한 아름다움’이 깔려있다. 서양의 카메라가 만들어낸 동양의 판타지는 화려해 보이나 진짜 동양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씁쓸함이 남는다.
결론 부분은 전반부의 강렬함과는 달리, 후반부의 반전이 힘을 빠지게 만든다. 복수극으로 쌓아 올린 폭력이 감정의 폭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거세게 달려온 에너지가 식는다. 그러나 그 느슨함은 의도된 것이다. 복수의 완결이 아닌 여지를 남겨둔다. 복수는 끝나야 하지만 복수의 끝에는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한다. 킬러는 그 피의 대가를 다시 피로 치르는 존재기 때문이다. 버니타의 딸 니키가 언젠가 브라이드를 찾아갈지도 모른다는 암시는 위험하고도 흥미진진하다. 복수는 완결될 수 없다는 이 단순함이 <킬 빌>의 세계를 영원히 미완의 신화로 남긴다. 우리는 아마 버니타의 딸, 니키의 복수를 기다릴 것이다. 사랑은 이미 식고, 영화가 나온다는 것도 불투명하지만 타란티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