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래그릇> 리뷰
모래로 빚은 그릇은 그릇의 본질을 수행할 수 있을까. 존재의 가치를 다하지 못한 모래 그릇은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쓸려내려갈 것이다. 무언가를 담기엔 부족하고 완성하기도 전에 바스러지는 그 그릇은 자신의 운명 앞에서도 형태를 얻는다. 노무라 요시타로 감독의 1974년 작 <모래그릇>은 이 기묘한 형상을 단서 삼아 한 남자가 겹겹이 쌓아 올린 침묵의 성벽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도쿄역 국철 카마타 조차장에서 60대 신원불명의 변사체가 발견된 것. 형사 이마니시와 요시무라는 도호쿠 사투리와 '카메다'라는 단서로 사건을 추적한다. 베테랑 이마니시 형사는 이 '카메다'가 지명일 것이라 확신하고 전국의 '카메다'를 뒤지지만 번번이 허탕이다. 피해자의 신원도 가해자의 정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진다. 그때, '카메다'가 도호쿠 지방의 지명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심한 사투리 때문에 다르게 들린 단어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세워지는데..
막막한 상황 속에서도 이 조그마한 단서는 범인을 찾을 실마리를 제공했다. 지도보다는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피해자의 행적, 그리고 카메다의 정체. 수사팀이 단어 하나에 매달려 전국을 헤매는 동안, 영화는 차가운 취조실을 벗어나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골길과 눈 덮인 산맥을 비춘다. 범인의 정체보다 누군가가 수십 년간 겹겹이 쌓아 올린 침묵의 성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결국 집요한 추적 끝에 '카메다'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수사는 급물살을 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범인의 윤곽이 뚜렷해질수록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낀다. 사건 해결에 가까워졌음에도 승리감보다는 안타까운 슬픔이 밀려온다. 단서의 끝에서 형사들이 마주한 것은 흉악한 살인마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야만 살 수 있었던 한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필사적으로 감춰온 '모래그릇'의 진실을 들추기 시작한다.
흔히 사람들은 모래로 '성'을 쌓는다. 성은 높고 튼튼한 성벽을 통해 적의 침입을 막고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 심리적 방어선은 와가 에이료에게도 절실했다. 는 과거라는 이름의 침입자가 감히 넘볼 수 없도록 화려한 명성과 성공이라는 벽을 높이 쌓아 올렸다.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단단한 요새를 구축해 자신의 뿌리를 영원히 잘라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가 쌓아 올린 것은 무너지지 않을 성벽이 아니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로 만들어진 그릇이었다. 성을 쌓아 올리는 것은 삶의 목표로서 당연스레 지향되는 과업이었겠지만 그에게 허락된 세계는 한정적이었다. 당장의 한 끼를 담아낼, 온기 한 줌을 담아둘 공간이 더 절실했다. 분명 그 성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도 있었겠지만 '숙명'은 더 이상 높은 고지로 나아갈 수 없는 족쇄와도 같았을지 모른다. 그 소박한 그릇 하나 빚는 행위조차 숙명 앞에서는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살인의 순간이 아니라 부정의 순간에서 시작된다. 사계절이 지나도 끊임없이 걷고, 쫓겨나는 부자의 뒷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전에 무정한 이별이 시작됐다. 그 후, 그는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온전한 그릇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잘라내려 노력한다. 자신에게 내려앉은 낙인은 저주와도 같았다. 그렇게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는 '성'을 잘라내고 자신만의 모래그릇을 빚어낸다. 그가 작곡한 화려한 협주곡은 자신의 비천한 과거를 덮기 위한 가면이었으나 유일하게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통로였다. 그 위태로운 성공은 과거의 성을 허물고 얻어낸 비극의 산물과도 같았다.
영화의 초반부는 '누가 죽였는가'에 초점이 맞춰서 수사에 속도전이 붙는다. 카메다라는 단서를 쫓던 형사의 구두 밑창이 다 닳아갈 무렵 영화는 사건의 실마리를 조금씩 내어주며 범인의 윤곽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정체가 드러날수록 수사의 긴장감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엔 한 인간의 생애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천재 음악가 와가 에이료가 지휘하는 협주곡 ‘숙명’의 선율 위로 지워버리고 싶었던 과거의 파편들이 쏟아진다. 특히나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건 세상의 모진 편견 속에서도 서로의 유일함이 되어주었던 아버지와 아들이 강제로 이별을 해야 했던 그 순간이다. 쫓겨나는 순간에도, 험한 눈길에서도 온기를 나누며 먼 길을 걸어왔던 부자가 생이별에 처했을 때의 아이의 절규는 협주곡의 웅장한 선율로 치환된다. 그 지울 수 없는 낙인은 '누가 죽였는지'에 대한 물음은 과거와 포함된 것을 도려내야 했던 사정을 비춘다. 그리곤 그를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의 굴레로 밀어 넣는다. 당연한 것이지만 잇따른 절망을 불러오는 지독한 숙명에 마음이 쓰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