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그 이름, 잊지 말아야 할 기억.

영화 <내 이름은> 리뷰

by 민드레


4월의 제주와 5월의 광주는 그 시기가 되면 깊고 아픈 향내를 풍긴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폭력에 무고하게 스러져간 이름들이 연기처럼 흩날리며 우리 곁을 맴도는 시기다. 영화 <내 이름은>은 수많은 세월 동안 금기시 된 역사와 지워진 이름들을 불러낸다. 정지영 감독이 연출하고 염혜란 배우가 주연인 이 영화는 2026년 4월 15일 개봉했다.


image.png


영화는 고등학생 영옥과 그의 어머니 정순을 통해 '이름'이라는 큰 주제를 펼쳐낸다. 영옥은 열여덟 소년으로, 놀림감이 되는 촌스러운 제 이름을 버리고 민종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엄마를 무척이나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지만 다른 엄마와는 다르게 늙은 어머니가 창피하기도 하다. 반면, 정순은 여덟 살 이전의 기억은 나지 않고 종종 햇빛 찬란한 날의 바람만으로도 불안증세를 앓는다. 아들은 이름을 바꾸려 애쓰고, 어머니는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 지난 기억으로 파고든다.


image.png


정순의 기억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좋은 기억을 남기고 나쁜 기억을 묻어두었던 망각은 일상에도 어느덧 영향을 끼쳤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무너뜨리게도 할 수 있는 기억의 정체는 제주를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국가 폭력의 생생한 현장이다. 국가는 색출의 번거로움보다는 효율을 선택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가려내는 수고보다는 아예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심산으로 마을 전체를 밀어버렸다. 동조하지 않으면 간첩을 도왔다는 낙인을 찍어 한 세계를 통째로 태워버린 그 '게으른 폭력' 앞에서, 이름들은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잿더미가 되었다. 그것을 목격해 왔던 정순의 해리증상은 그녀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였던 것이다.


image.png


영화에 아쉬움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이 두 서사의 불투명한 연결고리다. '이름'을 주제로 했으나 상대적으로 무슨 연관이 있는지 연결하지 못한다. 또한, 영화는 영옥의 학교 생활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으나 끝맺지 못한다. 물론 이 학교폭력과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을 대치시키려 하는 노력은 좋았으나, 그 비유는 겉돈다. 매듭짓지 못한 영옥의 성장통이 역사적 비극을 추모하는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영화가 끝난 뒤 영옥은 어떻게 되었는지, 친구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래의 시점을 보여주면서 해소되는 부분도 있었으나 중간이 잘려나간 듯한 설정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정순이 마주해야 할 그날의 진실과 희생된 제주도민의 서사를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image.png


영화는 영화 자체로 평가해야 하지만 이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도무지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최근 감독의 인터뷰로 인한 논란이다. 국가 폭력과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의 학교 폭력과 전과 논란으로 인해 은퇴한 한 연예인을 비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극 중 영옥의 학교 폭력을 역사적 비극의 은유로 사용했다면, 현실의 폭력 앞에서도 감독은 동일한 잣대를 가졌어야 했다. 영화의 진정성을 떨어뜨리는 이런 인터뷰는 매우 아쉽다.


image.png


<내 이름은>은 오래 잊혀왔던 이름들을 다시 부르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되찾지 못한 이름들도 있다. 이런 무겁고 불편한 소재는 늘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버려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살아있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고, 또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 내용을 마주하다 보면 창피하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피해국가라고만 생각했던 한국의 단면엔 국가적 폭력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으로 다가온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한 이데올로기의 아픔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이름을 지워나갔는지를 정순을 통해 실감하게 된다. 불편하더라도 한 번은 마주해야 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