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하면 바뀔 줄 알았다.
환경이 바뀌고, 동료가 바뀌고,
업무도 조금은 달라졌지만
새로움은 잠시뿐,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은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라면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선택한 회사는
더 나은 조건과 기회가 있으니
옮기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회의 시간에 발언을 망설이게 됐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하루 종일 마음이 쓰였다.
한 번은 공들인 보고서의 초안에 대해 상사에게 피드백을 요청했었다.
자료를 분석해서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가능한 솔루션들을 제시했다.
새회사에서 인정 받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피드백은 전면 수정
"이런 실수를 하면 어떡해요? 다시 수정해서 오세요"
"어떤 부분을 말씀이신가요?"
"...가서 다시 봐보세요."
10번 넘게 다시 봐도
도저히 잘못된 부분을 못찾아서
그래프와 용어를 수정해서 다시 갔다.
"수정하셨어요?"
"네..."
"...뭘 수정하신거에요? 그대로인데?"
"여기 그래프와 용어를..."
"하...여기보세요. 스페이스(띄어쓰기)가 왜 2개죠? 그리고 왜 여기만 마침표가 없어요?"
돌아온 피드백은
내용이 아닌 띄어쓰기와 마침표.
너무 황당한 피드백을 받아서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마치 무언가 큰 실수를 한 사람처럼,
조용히 자리에 돌아왔다.
어이없었다.
심란하고
억울했으며
주눅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감정을 뒤로 하고
보다 완벽한 모습과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직이 옳은 선택이었다는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서 나를 채근했다.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는건 없었고
오히려 상사는 본인의 실수도 온갖 이유를 붙여
내 책임이라고 뒤집어 씌웠다.
어떤 일을 하든,
그 끝엔 결국 내가 부족했다는 결론만 남았다.
그런 일들이 쌓이자
자연스럽게 내 의견을 줄이고,
더 잘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실수하지 말자는 태도가 커졌다.
조금씩 ‘최선’보다는 ‘무탈함’,
'책임’보다는 ‘침묵’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쯤 지나
나는 그 조직 안에서
‘받는 만큼만 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월급루팡한다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바꿀 수 있는건 없었다.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더 이상 억울하지도 않았다.
내가 내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마음은 그렇게 변해가는구나 싶었다.
직장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한다.
"감정적으로 나오시면 어떡합니까?"
"감정적으로 일하지 마세요."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감정은 감춘다고
사라지는게 아니라는 걸
나는 커리어에서 배웠다.
그리고 많은 동료와 직원들을 통해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감정으로 일하고,
감정으로 퇴근하는 사람들.
직장과 환경이 바뀌었지만
감정은 그대로인 사람들.
그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