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moon Mar 27. 2017

슬픈 녹음의 베르사유 정원

Day 7-3, Paris, France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주렴

  꽃들이 피던 날
  난 지고 있었지만 
  꽃은 지고 사라져도 
  나는 아직 있어

  루시드 폴 - 아직, 있다.



궁전 뒤편의 정원으로 이동했다. 실눈을 뜨고서야 윤곽이 잡히는 끝없이 펼쳐진 녹음과 대지. 그리고 그 너머의 대운하와 분수대까지.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정원의 크기에 놀란다. 궁전의 호화스러움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의 충격적인 규모. 한갓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혀를 내두를 정도의 행위밖에는 없다.



Palais de Versailles


망부석처럼 서 있던 것도 잠시, 정원의 면면을 살피러 움직이기 시작한다. 실내와는 확연히 다른 바깥의 공기. 하나, 상쾌한 공기를 얻은 대신 작열하는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살이 그을리는 것이 싫어 버티고 버티다, 결국 셔츠를 벗고 허리에 두른다. 피부에 느껴지는 따끔함이 여행의 흔적으로 남을 것에 걱정이 되긴 했지만, 땀이 줄줄 흐르는 것보단 한결 낫다.


봄의 향이 물씬 풍기는, 알록달록한 꽃이 만발한 화단을 지난다. 정원 중심부로 깊숙이 이동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스터리 서클과 같은 기하학적인 문양에 아기자기한 나무가 있는 왼편의 작은 정원이다.


뒤로는 큰 호수와, 우거진 수풀을 끼고 있는 장관도 물론 인상적이지만, 일정한 간격의 화분마다 촘촘히 심어진 허리 높이만큼의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다 조립된 레고를 보는 것 같다.


그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각본 속에는, 무대 뒤편 보이지 않는 손들의 정성과 노고가 진하게 배어있다.

   

이제 여유 있는 산책의 시작이다. 십자 모양의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분수대의 계단을 내려간다. 세모, 네모로 정갈하게 깎인 나무를 지나 미로처럼 공간을 구분을 해놓은 수풀 벽과 마주한다. 포장지를 벗겨낸 직사각형의 파래김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새인 것이, 여간 이국적인 게 아니다. 그렇게 정원의 내부는 패턴만 다를 뿐 이런 수풀 벽과 호수와 운하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리로 이루어진 대자연이 아닌 인간이 창조한 거대한 피조물은 규칙성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맞닥뜨린다. 인위적인 느낌의 연속과 반복의 그 지루함은, 충분히 강렬한 아름다움임에도 매력을 잃어간다. 이것이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 신의 정원이라 불릴 수 없는 이유겠다. 정원 내부로 들어갈수록 직선을 따라 일정하게 쳐낸 가지들을 보며 점점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혹하게도 그것들의 색은 유독 진하다.


살을 깎고 깎아도 뿜어내는 그들의 진한 녹색의 생명력. 생의 반을 잃은 생명에 생명력을 느끼다니. 이것이야말로 자연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이 아닐까. 공연스레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본다. 제초했을 때의 그 비명과 같은 향이 올라오는 듯하다.





이 찝찝한 기운이 가시지 않아, 걸음을 멈추고 구글맵을 켠다. 아직 더 보여줄 것이 남았다고 걸음을 재촉하는 베르사유 정원 약도. 그러나 이젠 이것이 썩 달갑지 않다.


그렇게 베르사유 정원을 빠져나왔다.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금 감정보다 더 큰 무언가는 채울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후에 프랑스를 다시 찾는다고 했을 때, 이곳은 가장 이 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장소일 것 같다. 과연 그것이 마냥 반가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

매거진의 이전글 잔인한 그 이름 '베르사유 궁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