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moon Mar 28. 2017

파리에서 만난 한국사람
'몽마르뜨'에서의 동행 Ⅰ

Day 7-6, Paris, France



#불완전한 대화에도

  웃음을 나누며

  빛나는 한때를 함께 만들었지

  이젠 그곳의 얘길 들으면

  자신 있게 떠올릴 수 있어

  9와 숫자들 - 싱가포르 中



술집을 나와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 쪽 계단 끝 즈음에 자리를 잡았다. 낮치곤 꽤나 마셔댔던 술 때문인지 약간의 숨 가쁨과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자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닥다닥 오밀조밀 모여있는 파리의 모습을 바라보다 선글라스를 벗어 맨눈으로 풍경을 접한다. 입꼬리 한쪽이 살짝 올라간다.



Montmartre



저기 어딘가에 있을 에펠탑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는데 한국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바로 왼쪽 앞줄에 앉은 두 명의 남녀. 한국 사람이다. 혹여 말을 걸까 우려했을까,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하나, 딱 티가 났나 보다.


말을 건네는 두 사람.

"한국 사람이시죠?"


잠시 주저했지만,

뭐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미소를 보낸다.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 반갑다는 말부터, 커플이신가요 물어보는 오지랖까지. 대화 상대가 그리웠나 싶을 정도로 주절주절거렸다. 아마 술도 한몫했으리라.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라 했다. 어느 사이트에서 동행을 구하다가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는 직장인이었고, 여자는 유학생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한참 동안 서로를 묻는 대화가 오가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마치 소개팅을 하다 서로 말이 없어지는 그 순간처럼 말이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 무렵 때마침 몽마르뜨 언덕을 웃음소리가 채운다. 앞을 보니 광대 분장의 한 사내가 호루라기를 불며 재간을 피우고 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오 재밌을 거 같아요!" 하며 화제를 돌린다.





사내의 공연은 정말 재미있었다. 대단한 재주이다. 한마디 말도 없이 오로지 장난스러운 몸짓과 행동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장난을 유쾌하게 받아주는 사람들의 여유가 부럽기도 했다. 사내의 잔망스러운 요청에 볼에 뽀뽀하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결혼 행진곡에 맞춰 걸어주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던 공연이 사내의 90도 인사와 함께, 그리고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끝이 났다. 여운에 한동안 침묵할 무렵, 두 사람이 일어났다.


"저흰 이제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가려고요." 마침 나의 다음 일정도 대성당이었다. 

"아 저도 거기 가려했어요.

 이렇게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우린 바로 사크레 쾨르 성당에 들어갔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그곳의 면면들은  눈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지금 돌이켜보니 기록 없는 기억은 상대적으로 옅다.


"이렇지 않아요?, 저렇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대화를 근근이 이어나가며 우리는 각자의 감정을 나눴다. 두 사람 모두 종교는 없는 듯했다. 어떤 오래된 성당을 가도 나올법한 그런 유의 이야기들. 그만큼 각자의 느낌은 상투적이었다. 그저 유명 관광지이기에 방문해본 느낌. 대화 외적으로도, 대강 훑고 지나가는 시선과 걸음의 속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했다. 유럽의 성당이란 성당은 이미 꽤나 보았고, 생전 처음 본 사람의 기도를 기다릴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았기에.


그렇게 우린 매우 짧은 시간만에 한 바퀴를 돌고, 옥상 전망대로 향했다. 사실 이 전망대는 존재의 유무 자체도 파악하기 힘들었던 곳이다. 프랑스에 살았던 사람들도 사크레 쾨르 성당에 그런 것이 있었냐고 오히려 되물을 정도였으니. 내가 이곳을 찾게 된 것은 인터넷도, 여행 책자도 아닌 후배의 말 한마디였다. 

“형 높은 거 좋아하시면 거기 가보세요.” 물론 그것마저도 다녀온 사람 사이에서 '있다, 없다.’ 로 의견이 갈렸었지만. 그래서 그냥 이곳에 도착해서 생각하기로 하고 미뤄두었었던 곳이다.





운 좋게도, 성당을 나와 뒤로 돌아가자마자 발견한 지하 계단의 매표소는 바로 내가 찾던 그곳이었다. 전망대 입구임을 한번 더 확인한 후 좁고 가파른 나선형의 계단을 올랐다. 개선문의 그것과 느낌과 비슷하지만 좀 더 오래되었고, 마찰력이 약한 미끈한 느낌의 돌계단이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꽤나 높다. 마지막 계단이 나올 때가 됐는데 하며 3번째로 생각할 즈음에야 옥상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린 각자 투덜 섞인 신음을 지르며 가쁜 숨을 골랐다.





역시나 이곳의 존재를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듯했다. 좁은 복도지만 사람이 없어 쾌적한 기운이 감돈다. 바깥으로 다가가자 뻥 뚫린 기둥 사이로 파리 시내가 바람과 함께 눈에 들어온다. 오후의 어중간한 시간과 살짝 구름이 낀 하늘은 파리 시내를 그대로 반사시킨 듯했다. 대부분의 지붕이 하얀 색인 것에 놀란다. 가장 화려한 도시일 것 같던 파리 시내의 전경은 나름의 담백함과 수수함도 갖고 있다. 우린 미치도록 좋다는 언어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스럼없이 전달했다. 나는 어제의 개선문을 예로 들었고, 다른 남자는 영국 어딘가의 야경을 예로 들었다. 유학생인 여자는 파리에 오고 난 후, 관광지가 처음이라며 마냥 좋은 듯 웃었다. 그러면서 시끌벅적스럽게 전망대 한 바퀴를 돌았다. 이날 나는 친구랑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이야길 했다.


우린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단지 나 홀로 그들에게서 떨어졌던 것 일수도 있겠지만. “잠시만요.”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 에펠탑 찾기에 매진했다. 새끼손톱보다 작게 보이는 앙증맞은 에펠탑. 에펠탑을 가릴 만큼의 고층 건물이 없음에 한번 더 감사하다. 누군가 나중에 유럽 도시의 아름다움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탁 트인 시야를 이야기할 것이다.





오똑 솟아있는 에펠탑은 이곳이 네가 꼭 봐야 할 곳이라며 지도에 고정핀으로 꾹꾹 눌러 표시를 해놓은 것 같다. 그 중심을 따라 파리의 삶들이 얌전히 자리 잡고 있다. 파리에서의 2.5일은 이미 충분한 익숙함을 방해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어쩜 이렇게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을 수 있는지.

사진 찍기에 정신이 팔려 한동안을 있었다. 기척이 느껴져 뒤를 바라보니 두 명이 어느새 다가와 어물쩍 거리고 있다. 슬슬 내려가자는 싸인이다. 그들 중 유독 나만이 에펠탑에 집착하고 있었다. 어쩌면 너른 시야를 가진 그들이 나보다 더욱 파리를 제대로 즐기는 것 일수도 있겠다.





이 풍경이 아쉬워, 시간을 끌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마침 좋은 소재가 있었는데 그것은 전망대의 벽과 창 사이를 채우고 있는 각각의 기둥들이었다. 그것들은 날카로운 것으로 긁혀 만들어진 낙서들이 생채기처럼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일종의 방명록과도 같은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으로는 이런 낙서들이 자취를 감출 것 같지 않냐고.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길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이유로.


또한, 이런 앤티크하고 투박한 느낌이 사라진다면 관광객 입장에선 조금 섭섭할 것 같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오글거리고 쓸데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당시엔 꽤나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을 찍은 후 우린 그곳을 내려왔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

매거진의 이전글 너무 좋아서 슬픈 날, 그런 날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