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5, Paris, France
#바람결에 실려 들려오던
무심히 중얼대던 너의 음성
지구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대
우리 얘기도
그래서 끝이 있나 봐
유희열(Feat. 신재평) - 여름날 中
발이 멈춘 곳.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는 콩코드 광장과 에펠탑이, 왼쪽으로는 세느 강이, 뒤쪽으로는 튈르리 공원이.
작별의 인사를 위해 제공한 자리, 파리가 건네는 마지막 호의를 받아들인다.
친구와 나는 따로 자리를 잡았다. 각자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그 인사는 단순한 안녕이 아닌 어떤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만 같은 명분을 담고 있었다. 나는 멀찍이 놓인 의자를 질질 끌어, 모든 것들의 정중앙이다 싶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고개를 돌릴수록 파리의 유명 관광지들이 차곡차곡 눈에 밟힌다. 이별의 이름을 속으로 읊는다. 무언가를 보면 항상 물음표와 느낌표를 찍어대던 마음이 지금은 온점만을 가득히 찍고 있다.
길고 긴 이야기의 끝.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 그 결말을 목전에 두고 있다. 며칠 동안의 나날들. 아름답고 행복했던 이야기들. 어느덧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짧고도 길었던 추억들. 카메라를 들어 그 순간들을 조용히 곱씹는다. 그 사진들은 뒤죽박죽, 서로 내 마음을 흔들려 아우성 대고 있다. 카메라 액정에 손을 대어 그것들을 확대하기도 하고 한동안 넘기지도 못하며 더듬더듬 찬찬히 어루만졌다.
비현실적인 곳에서, 현실 감각 없이 자유로이 떠돌던 나는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또 다른 시공간에 놓인 현실을 말이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예민한 사람이었다면, 눈에 번진 아쉬움을 뚝뚝 떨구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작별은 습기 하나 없는 완벽히 건조한 가루 상태여야 했다. 후하고 불면 날아가는, 툭툭 털어내면 떨어지는 그런 상태. 만약 일말의 수분이라도 첨가된다면 반죽과 같은 상태가 되어 서로 엉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질척일 것이었다. 애써 떨어내더라도 끈적거리는 자국이 남을 것이었다.
이것은 경험이 빚은 기약이었기에 가능했다. 다음 버스는 분명히 올 것이라 생각했다. 지나가는 버스를 따라 뛰지 않고 다음 버스를 차분히 기다리는 것처럼, 헤어짐은 일시의 상태란 믿음으로 그렇게 건조하고 담담해야 했다.
이제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차라리 작별을 고하고 바로 뒤돌았다면 달랐을까. 늘 그랬듯 그 다짐 하나 지키지 못하고 나는 일어났다. 분명, 작별을 고했건만 계속해서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사람처럼 친구에게 ‘잠깐만’이라는 말을 남기고 세느 강으로 걸었다. 각자의 저편을 잇고 있는 다리 몇 개를 지그재그로 건너 다니며 그렇게 격정적으로 마지막을 담으려 했다. 그곳의 연인들, 강, 유람선, 가로수, 건물, 바람, 하늘, 햇빛, 그림자,
땅, 자동차, 길, 버스, 벤치, 카페 등 이것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허무하리만큼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가속이 붙어 흘러간 시간이자, 멈춰버린 이성을 다시 현실로 불러온 시간.
이곳을 일어나서 공항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필시 모든 걱정과 고민이 한꺼번에 몰려오리라. 달리 맞이한 아침엔 한동안 시차 핑계를 대며 잠을 잔 듯 만 듯한 얼굴로 기어 나와 열병을 치를 것이다. 그 시기가 한참 지난 후,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무렵 이 기억들은 정수리에서부터 슬며시 기어 나와 지친 목과 어깨를 다독거릴 것이다.
이제 정말 안녕. 안녕을 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녕을 말한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안녕. 다시 한번 안녕. 안녕했던 기억만을 남긴 채.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Fin.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