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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1. 2023

제주, 너는 나의 위로였다.

자연의 위로

누군가 내게 인생을 살면서 가장 좋았던 시절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제주에서 살았던 날들'이라고 말할테다. 겉으로 드러난 형편만 생각한다면, 제주에서의 10년, 내 나이 10살부터 19살까지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 없었다. 집이라는 곳에 작은 정도 줄 틈도 없이 이사를 자주 다녔고, 가난했고, 남루했다. 공부, 친구 고민으로 가득찬 혹독한 사춘기를 겪으며 삶에 고군분투했다. 그런 나에게 제주의 땅은 거저없이 주어진 선물이자 위로였다. 그곳에는 호기심 어린 나를 반겼던 감귤밭, 우는 나를 품에 앉아줬던 바다, 함께 울어주었던 빗물이 흘러 넘쳤다. 



제주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그곳에는 감귤밭이 지천이다. 여고시절, 내가 다녔던 학교는 감귤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업이 지루해질 때면 창밖을 내다보곤 했는데 계절마다 알맞게 익어가던 감귤밭으로 나는 늘 황홀했다. 바람 한점 불지 않아 땀이 주룩 흐르던 여름날에는 생생한 초록빛이 생그러웠고,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날에도 그 잎이 여전히 초록인 것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야릇하게 보이던 노란색은 누구보다 먼저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려주었다. 알맞은 때가 된 것이다. 

 학교와 감귤밭 사이로 애매하고 위태롭게 세워진 낮은 돌담이 있었다. 이토록 낮은 돌담이라니, 가히 유혹적이다. 땡땡땡.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되자, 도저히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은 이미 머릿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귤 서리를 하기로 작정했다. 밤 아홉 시가 되자, 날은 어둑어둑해졌고, 선생님의 감시가 소홀해졌다.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며 조용히 의기투합했다. 교실에 남은 학우에겐 선생님이 찾거들랑 화장실에 잠시 다니러 갔다 말해달라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전우의 심정으로 교복 치마를 한껏 높이 치켜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 둘 담을 넘었다. 순식간에 우스워보이는 담을 넘은 후,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쉿. 각자의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도둑 고양이 마냥 살금살금,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귤나무 사이로 동그랗고 작은 주황색 귤을 찾아 헤맸다. 하도 자주 먹어서 그런지 단순한 촉감으로도 말랑말랑한 귤을 손에 잡을 수 있었다.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작은 귤을 따서 교복 치마폭에 감싸 안았다. 순식간에 치마폭에 귤이 가득찼고, 우리는 돌담에 기대어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밤하늘의 별에 의지해 서로 귤을 까주며 나눠먹던 그 달콤함과 새콤함. 입안 가득히 퍼지는 자연의 선물에 고된 수험생의 녹록함이 노곤히 풀렸다. 아쉽게도 야간자율학습이 마무리 될 10시가 다되가자, 아무 일 없는 듯 교실 안으로 돌아왔다. 복도를 지나는데 선생님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화장실을 다녀왔노라 거짓말을 둘러댔지만 금방 들키고 말았다. 친구들을 둘러보니, 세상에 얼굴과 손이 쌔까매진 것이 아닌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른채 당황스러운 웃음을 지었지만, 선생님께선 꿀밤 한대씩을 우리 머리에 선사하셨다. 생각해보니, 돌아올 때 넘었던 담은 하필 소각장 근처의 담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른채, 까만 동공을 흔들거리며 둘러대던 우리를 보며, 선생님은 얼마나 웃으셨을까?   그 시절엔 모범생이든, 장난꾸러기든 하나의 추억 서리처럼 귤 서리를 하던 때라 눈감아줄 수 있었던 아량이 있었기에 감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다음 날, 크나큰 광주리채 비타민을 가득 채워 여고생에게 나눠주었던 과수원 주인분께 죄송해서 몸둘 바를 몰랐지만 말이다. 


 


겨울에 감귤밭이라면, 여름에는 바다였다. 여름방학 내내 이어진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에 지친 우리는 또 하나의 꾀를 부렸다. 이마를 탁탁탁. 사정없이 몇 대 때리면 붉게 달아오르면서 열감이 생겼다. 다 죽겠다는 얼굴로 교무실에 들어섰다. 

“선생님 저 오늘 머리도 너무 아프고, 열이 나서 조퇴해야할 것 같아요.” 

선생님의 대답이 떨어지기 전까진 두근두근. 오늘은 통과일 것인가? 거짓 꾀가 들킬 것인가? 나만 허락받고, 다른 친구들은 못 나오면 어떻게 하지? 온갖 걱정도 잠시. 한쪽 눈을 찡긋 감은 선생님이 조퇴를 허락하는 날에는 바다로 향했다. 제주시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이호 바다와 함덕 바다였다. 이왕이면 좀 더 에머랄드 빛을 품은 함덕 바다로 가는 날에는 시외버스 타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새 함덕이었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뛰어들면 파우더처럼 고운모래가 내 발에 와닿았다. 마치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고 보드라운 모래. 맨들맨들하고 희디흰 모래는 햇빛에 자글자글 타올랐고, 참을 수 없이 뜨거워질 때쯤이면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치마 허리단을 접어 최대한 물에 젖지 않게 발만 담그고 놀자고 했건만, 여고생이 앞뒤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온몸을 드러내는 바다의 민낯에, 경계 하나 없는 넓은 하늘에, 우리도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내맡겼다. 파도에 몸을 맡기면 자유롭게 떠밀렸다. 이유 모를 답답함에 소리를 질러도 아무런 대꾸없이 다 들어줬던 바다의 너른 아량에 속이 후련해졌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질때면 친구들과 노을을 바라보며 우리의 미래를 그렸다. 빨간 태양이 까만 하늘에 멀겋게 흐려져갈 때, 저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저 바다 너머 세상으로 우린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까만 고요함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바다의 위로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여름이 찾아오면 짠내뿐 아니라 빗내음이 바다부터 올라와 제주 전역을 감쌌다. 우리나라의 최대 다우지인 제주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비를 미워한다면 짜증나는 마음뿐 무엇이 더 있겠는가.  남들은 투덜댔지만, 나는 비를 사랑하기로 했다. 예고 없이 내리는 비가 좋았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에 친구랑 손잡고 운동장을 뛰었다. 선생님들은 “야! 이 미친 x들아"이라고 욕도 하셨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첨벙첨벙. 선생님의 꾸짖음에 반항하듯 일부러 고인 물만 찾아 빗소리에 맞춰 발을 굴렀다. 흙탕물이 교복에 잔뜩 튀었지만 신났다. 선생님들이 보시기엔 우리가 철부지처럼 여겨졌을지 모르지만, 우린 제법 진지했다. 우리 나름의 비를 맞는 행위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이렇게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낙비가 인생의 역경 같지 않냐고. 우린 역경을 마주하고 있는 거라고 소리를 질렀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인생의 자글한 고민들 모두 다 빗물에 시원하게 씻겨가길 바라며…  톡톡톡. 내리는 빗물소리는 토닥토닥 내 마음을 다독이는 속삼임이었다. 후두둑. 내 몸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내 마음을 토닥이는 손길이었다.  비릿한 빗물 냄새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진 건, 아마도 제주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곳에 살면서 예고도 없이 자주 만났던 비를 의연하게 맞았던 것처럼, 삶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역경을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주의 감귤밭, 바다, 비와 함께 나는 성장했다. 1년, 2년을 미처 한 집에서 살지 못하고 이사를 다녀야 했던 나에게, 그래서 어느 곳 하나 마음 둘 공간이 없었던 나에게, 제주의 땅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자연의 위로가 이만큼 날 성장시킨 걸 보면 사람을 자라게하는 건, 엄마와 누군가의 손길만이 아닌 자연의 손길도 가득한 것 같다. 절망으로 점철된 삶에도 때에 맞는 순수한 기쁨을 누렸던 건, 바로 제주의 자연 덕분이었다. 자연의 손길이 그리운 날이면 제주로 떠나고 싶다. 오늘처럼 비가 잔뜩 내리는 날에는 빗소리에 함께 상념에 잠긴다. 제주에 살땐 한번도 돈주고 사본적 없는 감귤을 주문하고 입맛을 다신다. 지금도 너는 그 자리에 그렇게 있을까? 가만히 제주의 위로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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