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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2. 2023

제주 거로마을, 울퉁불퉁 돌담집



고등학교 3학년 때, 1년간 살았던 곳은 제주시 거로(巨老)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巨老’ 마을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현무암 비석이 서있었다. 조선시대에 관리와 유학자를 많이 배출하며, 학덕이 높은 원로가 많이 사는 마을이란 의미로 ‘거로마을’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이곳에 이사오게 된 것은 학덕의 좋은 기운을 받아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소망때문은 아니었다. 제주시 중에서도 발전이 더디었던 마을, 그리하여 가장 싼 값에 사글세 방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로마을’ 버스정류장뿐만 아니라 마을에는 지천으로 돌담이 가득했다.  밭이나 집이나 무덤이나 과수원이나 온통, 돌담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제주의 풍경 그 자체였다. 구멍이 송송 뚫린 새까만 현무암은 사방팔방 겹겹이 쌓여 바람 많은 제주의 기후로부터 많은 것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학덕이 높은 원로들도, 모진 바람을 이겨낸 돌담도, 역사의 거센 풍랑은 막지 못했나보다.  600년 역사를 자랑했던 그곳은 제주의 슬픈 역사인 4·3 사건의 피해지였고, 그때 당시 온 마을이 불길에 휩싸였다고 한다. 피난길에서 돌아온 피난민들이 한라산까지 가서 목재를 구해와 집을 다시 재건하고 지켜냈던 마을. 우리는 그곳에 살게 된 것이다.


 대단한 역사따윈 와닿지도 않던 고3 수험생이었다. 나는 그저 산기슭을 감돌아 흐르는 화북천 사이에 놓인 거로교를 지나서도 굽이굽이 한참을 들어가야했던 그곳이  몹시 불편할 뿐이었다.  다시는 어떤 침략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돌을 쌓았을 돌챙이의 마음이 느껴질만큼우리 집 돌담은 견고했다. 그리고 어떤 공격에도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주인 할머니의 집과 우리집은 옹기종기 가깝게 붙어 있었다. 소리를 지르신다거나 한번도 혼을 낸 적이 없었던 주인할머니였는데 세들어산다는 사실 하나에 눈치껏 몸조심을 했었다.

 우리가 세 들어 살던 집은 제주도 전통 가옥  모양이었다. 행여나 높게 돌을 쌓아 집을 짓는다면 무너질 가능성이 있고, 바람이 많은 지역이기에 지붕이 낮아야했을 것이다. 다행히 짚으로 엮은 지붕이 아닌 슬레이트 지붕이었지만 창호지 창문을 간직하고 있어 쉬이 불어오는 바람에도 집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키작은 돌담집이 키카 작은 나인양,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담집이 울그락붉그락한 내 마음인양 사는 내내 미웠다. 친구들은 세련된 양옥집으로, 하나둘 생겨나는 아파트로 이사가던 때에 역사의 뒤안길, 구석진 후미진 동네라니…. 할 말이 없었다.


 한번은 어느 여름날.. 해가 중천까지 솟았는데 늦잠을 자고 있었다. 수험생 주제에 잠이나 자다니… 공부할 맛은 이미 잃었고 라디오를 켜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줘. 꼭 네게만 내 꿈을 맡기고 싶어"

내 꿈을 맡길 그대는 없고, 뭐든 해야겠다 싶어 일어났더니  엄마가 돌리고 간 세탁기 안에는 내 머리 속처럼 뒤엉킨 빨래가 가득했다. 지금 빨리 햇볕과의 만남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엄마의 잔소리에 살아남지 못할 상황이었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여름을 이기기 위해 똥머리를 하고, 느릿느릿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돌담집 초록색 철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댁, 하영 더운데 빨래 널엉수꽈?”

‘새댁’이라는 말에 양미간을 찡그러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인삿말 뒤로는 유월절인지, 도를 아십니까였는지 도통 기억은 안나지만 새댁이라는 말에 확 빈정이 상해서는 “그런거 안 믿엄수다. 어영 갑서”하고 매몰차게 좇아 버렸다. 땡볕에 빨래를 너느라 새댁 소리를 들어야했던 수험생은 몹시도 그곳이 떠나고 싶었다. 밤마다 불어대던 제주 바람을 온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내 마음마저 흔들리게 했던 낮은 돌담이 미웠다. 내 기억 속의 돌담집은 그토록 초라하고 낡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요즘 제주 돌담집 앓이 중이다. 제주 여행을 가게 되면 반듯한 호텔 숙소보다 돌담집 펜션이 가고 싶고, 키가 높은 세련된 카페보다 고즈넉한 마을의 돌담집 카페에 가고 싶다. 울퉁불퉁 튀어나와 나를 인정사정없이 쿡쿡 쳐댈 것 같았던 돌들은 이제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든든하게 느껴진다. 이토록 매력적이고, 정겨운 이 풍경을 나는 왜 그토록 미워했을까? 왜 그리도 떠나고 싶어 안달이었을까?  

19살인,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건, 비단 돌담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깝게는 평생의 앞날이 결정된다는 수능이 두려웠음에도 무엇을 해야할 지 몰랐던 내가 미웠을테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매는 내 자신이 미웠을 것이다. 그리고 1~2년을 마다하고 이사를 다녔던 나는 내년이면 또 어떤 집으로 거처를 옮겨야할지 근심하느라 돌담집도, 내 자신도 사랑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낡아서 삐걱거리던 그 집을,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누구에게도 티를  내지 않고 꿋꿋한 척 서있던 그 날의 내가 사뭇 애잔하다.

 돌담집을 내 기억 속에서 다시 복원하여 추억하고 어루만지는 건,, 그 시절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다시 안아주는 일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소박한 낭만을 머금은 그때의 돌담집을 그려본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어두컴컴한 내 방으로 들어간다. 구멍이 숭숭 뚫린 누런 창호지 창문을 열어 빛을 들인다. 창문 밖으로는 시절 좇아 변하는 귤밭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가녀린 이파리가 듬성듬성 나던 봄, 쨍한 햇빛을 받아 이파리가 반질반질했던 여름, 빗방울을 머금은 청아한 초록빛 이파리가 유독 선명했던 여름, 매서운 겨울 바람에도 전혀 기죽지 않았던 이파리,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단단하게 서있는 주황빛 귤나무.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낮은 돌담. 그리고 귤밭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 19살의 나까지….. 애정어린 손길로 가만히 토닥여준다.

“잘 지내왔고, 잘 자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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