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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Dec 17. 2023

당신은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씨앗을 심고 있나요?




지난 학기에는 이상심리학을 강의였다. 이상 심리학은 인간의 이상 행동과 정신 장애에 대해 연구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울장애,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ADHD, 품행장애, 성격장애 등등 수많은 정신병리의 진단기준과 원인 및 치료대한 내용이 나온다. 진단기준을 배우게 되면 주변의 사람들을 속단하여 평가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절대 함부로 쉽게 판단하지 말자고 당부하곤 했다. 덧붙여 정신병리를 공부하는 이유는 정신 장애를 지닌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위함이라 일컬었다.


내담자가 지닌 정신병리의 증상 때문에, 증상으로 인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인해 교사나 상담자가 때론 화가 나고, 상처를 입기도 다. 하지만 그들에게 작은 한마디와 관심을 보내는 것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나의 이런 이야기에 때론 선생님들이 "그렇다고... 그렇게 한다 해도 아이들이 변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라고 볼멘소리로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상담을 한다고, 교육을 한다고, 치료를 한다고 변하긴 할까요? 의문을 갖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가르치는 이나 상담하는 이들에겐 좌절감이 꽤나 친숙하기에 이들이 지닌 아픈 좌절감에 대해서 절실히 공감했다. 하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상담을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어떤 나무가 될지, 어떻게 자랄지,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죠. 그래서 때론 좌절스럽고 지칠 때도 있고요. 씨앗을 심는 일이 그렇잖아요. 언제 꽃 피울지 모르지만... 그래도 심죠. 언젠가 때가 되면 아이 마음에 우리가 심은  자그마한 씨앗이 적당한 꽃내음을 리라 믿어요."


그 후로 발제 자료든, 어떤 이야기든 "씨앗을 심어야죠!" 웃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런 이야기가 그분들의 마음에 새겨졌는지, 아니면 또 한 번 스스로 다짐할 요량으로 언급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이번 학기 마지막 발제하신 분도 발제자료에 공감적 이해, 따뜻한 태도... <씨앗을 심는 마음>을 작성하였다. 꽤나 훈훈하고 뿌듯한 순간이었다.


씨앗을 심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그림책 <아나톨의 작은 냄비>가 떠오른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에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잘하는 것도 많은 주인공 아나톨이 등장한다. 하지만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떨어진 냄비를 데리고 살아가느라 아이는 곤경에 종종 처하게 되었다. 자꾸 걸려서, 걸리적거려서 가뜩이나 힘든 아나톨에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아나톨의 좋은 점보다 달그락 거리는 냄비를 유독 눈여겨보느라 사람들은 아나톨을 피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나톨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꽁꽁 숨어버렸다.



그런 아나톨에게 다가온 이가 있었다. 그 한 사람은 아나톨에게 "똑똑똑" 인사하고, 같이 놀아주고, 눈 맞춰주고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그를 만난 아나톨의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까? 여전히 냄비는 거추장스럽지만 그와 함께한 삶을 나름 꾸려 나간다. 아나톨에게 다가갔던 그 한 사람처럼, 상처받고, 아픔을 지닌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그 한 사람이 '우리'가 되면 어떨까? 그런 씨앗을 심는 일을 우리가 하면 좋겠다.



씨앗이란 그렇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좋은 땅이 아니면 잘 자랄 수가 없다. 좋은 땅뿐이랴. 적당한 바람, 적당한 햇빛과 온도가 필요하다. 어떤 씨앗은 좋은 땅에 심겨 잘 자라다 예상치 못한 거센 풍랑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너무 강한 햇빛에 차마 다 자라지 못하고 타버려 죽기도 한다. 어떤 씨앗은 거친 땅에 심겼지만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자라나기도 한다. 들판의 야생초나 시멘트 사이사이에도 굳건히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농부 된 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할 모진 바람과 거센 풍랑을 염려하느라 애초부터 씨앗을 심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그래도 그들은 심는다. 농부의 심정이 그런 것 아닐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씨앗을 심는다. 어떤 꽃을 피울지, 어떤 열매를 맺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심는다. 때론 크나큰 열매를 생각하며 미소 짓기도 하고, 때론 자라다 이내 시들어버릴까 노심초사하기도 하면서.... 심는다.


우리가 사는 일은 저마다의 씨앗을 심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학생들의 마음에 '교육'이라는 씨앗을 심는 교사도 있고, 내담자의 마음에 '위로'라는 씨앗을 심는 상담자도 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애정이 담뿍 담긴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는 엄마도 있다. 아기 엄마는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며 어떻게 자랄까 상상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도 저마다의 글이라는 씨앗을 심는다.  그 글은 독자의 마음에 새겨져 그들 삶을 조금씩 자라게 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수고스러움이 쌓여 더 나은 세상이 된다면, 한 아이, 한 생명, 한 아나톨의 마음에 작은 씨앗이 심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 씨앗이 어떤 나무로 자랄지,
어떤 열매를 맺게 될지

언제 열매를 맺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심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씨앗을, 어떤 이에게 심고 있나요?

당신이 엄마라면 자녀의 마음에 어떤 씨앗을 심고 있나요?

살면서 누군가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씨앗을 하나 둘 심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모두 정원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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