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엄마는 유럽을 꼭 한 번은!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친구들과 가시라 해도 같이 갈 사람이 없다고. 나랑 같이 갔으면 하는...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시간이 지나면 더 어려워질 것 같다고 어린아이처럼 꿈꾸는
엄마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2025년 7월, 서유럽 패키지여행을 예약했다 취소했다를 반복했다.
일단, 난 패키지여행에 자신이 없다. 이제까지 살면서 패키지여행이라곤 3박 5일, 149000원 땡처리 여행(밥도 먹여주고, 잠도 재워주고 비행기도 태워주는데). 베트남 다낭 패키지뿐이었다. 그런데 유럽 패키지라고.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버스에서 내려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패키지. 나에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3주 남짓한 여름 방학 중에 강의일정이 다른 해보다 유독 많았다. 10일이란 시간을 내는 것은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그렇게 포기했다.
겨울 방학이 다가오니 부담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엄마는 더 연로 해지실 테고,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인데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한가위 쿠폰 신공으로 참** 여행사 패키지를 예약했다. 대한항공 국적기, 이탈리아 일주 패키지인데도 불구하고 250만 원이었다. 나름 합리적이고도 매우 고무적인 가격에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10월에 여행비용을 전액 지불했다. 내년 1월이 되면 떠나기만 하면 된다. 없던 설렘도 조금씩 피어났다.
12월이 되었다. 여행을 취소하겠다고, 환불을 해주겠다고 여행사 측에서 연락이 왔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유를 물었더니, 모객에 실패했단다. 다시 패키지여행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유로 환율 상승세 때문인지 비슷한 패키지는 100만 원은 더 줘야 예약할 수 있었다.
최대한 가겨대비 좋은 여행 패키지를 찾아 예약을 반복했는데 죄다 취소당했다. 이 또한 참** 여행사였다. (이제 나에겐 참~ 좋은 여행사가 아닌, 안~ 좋은 여행사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엄마, 예약하는 것마다 취소돼요."
"이젠 진짜 떠나야지 떠나는 건가 보다 해야겠네. 여기저기 이탈리아 여행 간다고 자랑했는데 나만 실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네.
엄마는 아쉬워서 하신 말씀이었지만 나는 화가 났다. 바쁜 중에 여러 번 상품을 검색하고 예약하는 번거로운 일을 반복했는데 돌아오는 건 내겐 비난 같았다. 그럴수록 더 알게 되었다. 엄마는 정말 가고 싶어 하시는구나.
다시 지루한 일들을 반복했다. 닥치는 대로 예약하기 시작했다. 이젠 가격 경쟁이고 뭐고 눈에 보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확답을 받았다. "본 일정은 풀북이고 확실하게 진행됩니다."
막상 여행을 '진짜로' 가게 되니, 걱정이 앞섰다. 일흔을 앞둔 엄마와 잘 다닐 수 있을까? 엄마와 함께한 베트남 여행, 푸켓 여행 등을 떠올려보면 끝이 항상 안 좋았다. 엄마는 무언가 서운하면 여행지에서 꾹 참고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 폭탄 메시지를 보내셨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했을까? 후회를 반복했고 여행의 풍경은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8박 9일간, 유럽이라고. 장시간 비행, 체력 싸움이 요구되는 패키지여행. 나이가 드셔서 다혈질의 엄마는 어느 정도 노곤해졌지만,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걱정을 슬쩍 내비치자, 함께 식사를 하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첫날엔 옆집 아줌마를 모시고 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음날, 엄마와 또 부딪힌다? 그러면 내가 학부모를 모시고 왔다.. 학부모를 모시고 왔다... 학부모를 대하듯, 대하시면 돼요."
무릎을 탁 쳤다. 감정이 많이 개입되면, 상처를 받는다. 옆집 아줌마, 학부모라고 생각하면 절로 친절해지고 나 또한 화를 잠재울 수 있게 된다.
매년 어머니와 자유여행으로 유럽 여행을 다닌 미스 선생님의 말이니 새겨 넣었다.
그렇게, 진짜 떠날 날이 되었다.
한껏 상기된 얼굴로 인천공항 3층, 1 카운터에서 엄마와 만났다. 엄마는 다행히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출국 심사장에서 대기를 하던 중이었다.
" 올해 4월에도 친구들이랑 호주여행 간다"
"네? 엄마! 그러면 유럽여행을 친구들이랑 가시지 그랬어요. 더 재밌었을 텐데."
"네가 유럽여행 같이 가자고 해서 온 거잖아."
"에? 난 패키지 싫다고 했는데. 엄마가 계속 얘기해서 온 건데"
하아. 의미 없는 대화가 되었다. 난 엄마 때문에 무리해서 진행한 건데 엄마는 내가 가자고 했다고. 이렇게 우린 다르게 생각을 한 것인가 말인가.
이제 와서 누가 먼저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좋은 시간이 되길, 앞으로 남은 우리의 날들 속에 꺼내볼 수 있는 웅장하고 거대한 기억으로 남길... 그렇게 기도하는 수밖에.
.. 그렇게 마흔 중반을 넘어선 1월, 다시없을 것 같은 날, 엄마와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