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좌석 지정이 시작되자마자, 틈만 나면 좌석을 검색했다. 15만 원을 더 내고 앞자리를 선택할까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 자리를 선점했다. 남은 자리 중 최대한 앞쪽, 날개 쪽은 피하기. 엄마는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니 복도 쪽이 좋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이 세계 어디에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창 쪽에 앉고 싶었다.
모험가의 기질이 발동했다. 3-3-3 좌석 배정이니, 만약 중간 자리를 비워두고 두 자리를 예약한다면? 혼자서 밀라노에 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고, 그것도 중간에 껴서 앉을 사람은 없겠지? 내가 생각한 대로, 가운데 자리를 비워서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것이 없을 듯했다. 만약 한 사람이 앉는다면.. 어쩔 수 없지. 엄마와 나는 모르는 사이인척, 그는 중간에서 뻘쭘하겠지 뭐. 좌석을 지정했다.
나흘간 지켜본 바에 의하면, 유효했다. 3시간 전, 체크인을 할 때도 여전히 비어있었다. 심장이 쫄깃쫄깃, 이제 더 이상 좌석을 검색해보지 않기로 했다.
드디어 탑승 완료!
17인치 기내용 캐리어를 구입한 후, 보조 배터리를 넣었다. 선반 위에 올릴 수 없어 좌석 밑에 두고 싶다고 하니, 승무원이 불편하시지 않겠냐 염려했다. 그러다 "음. 아니면 가운데 두셔도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 자리는 승객이 없는 걸로 확인됩니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소가 흘러나왔다. 차마, 말로 하진 않았지만 "거봐! 나의 선택은 옳았지?" 우쭐댔다. 훈남인 승무원과도 흐뭇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점잖은 척했지만, 행복은 감출 수가 없었나 보다.
14시간의 비행이지만, 다리도 펼 수 있겠다. 미뤄뒀던 드라마도 볼 수 있겠다. 논문도 읽을 "수 있겠다"(과연(?)), 성경도 읽어야겠다. '페르마타! 이탈리아' 에세이도 읽을 수 있겠다. 글도 쓸 수 있겠다. 즐길거리 투성이었다. 세상과의 연락이 모두 두절된 만큼, 두고 온 일들도 잊기로 했다.
7시간쯤 지났을까? 허리를 슬슬 펴고 싶었다. 150 중반 밖에 안 되는, 자라다만 나는, 두 자리 정도면 무릎을 굽힌 채 눕는 건 식은 죽 먹기이다. 몸을 누이니, 엄마는 내 다리를 엄마 무릎 위에 올렸다. 그리곤 조물조물, 종아리를 주물러주었다. 일흔이 다되어가는 엄마에겐 마흔 중반인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을까? 세월이 흘러 내가 일흔이 되고, 내 딸이 마흔이 된다 해도, 지금의 엄마처럼 어린아이 대하듯, 내 딸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춘기 무렵부터 어른이 되어서도 줄곧 엄마가 미웠다. 그리고 싫었던 적이 많았다. 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지, 답답하고 화가 났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발버둥 쳤다. 증오의 결과로 그동안 꽤 많은 것을 이뤘고 해냈다. 엄마처럼 살고 있지 않노라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큰 딸이 사춘기가 되자 많은 것이 무너졌다. 한 여자로, 그것도 홀로, 어찌 되었든 엄마의 자리를 지켜낸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또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되었다.
9살 무렵, 엄마와 단둘이 기차를 탔다. 아흔이 넘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울면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슬픔 중에도 엄마는 삶은 계란 하나와 바나나 우유를 사서, 창가 밑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나를 지금처럼 엄마의 무릎 위에 눕혔다. 또래보다 더 자그마했던 나는 엄마의 무릎에 내 머리를 대고 쪼그려 누웠다. 창밖의 햇살은 포근했고, 엄마의 손길은 따듯했다. 오랜만에 느낀, 보드라웠던 엄마의 손길이 좋다고 생각하며 슬쩍 잠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받고 싶은 사랑에 비해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고 투덜거렸었는데. 돌아보면 이렇게 포근한 기억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 사랑을 발판 삼아 나는 그래도 괜찮은 어른이 된 것 같다.
그 사이, 엄마의 손길은 더없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투박해졌다. 엄마의 손길에 잠이 들었던 9살의 나는, 엄마의 손길에도 쉬이 잠들 수 없는 중년이 되었다. 그러함에도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니까, 거칠어도 투박해도 사랑은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