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않는 공감과 혼자 품어야 하는 상처
“자신의 아픔은 자신에게 있어서만 절댓값이다.”
—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서른넷, 초가을.
한적한 레스토랑에서 전 애인의 어머니가 내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외침은 아들을 뺏길까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식을 향한 왜곡된 사랑의 비극이었다.
취업하면 결혼하겠다던 그의 약속은 결국 그녀의 외침 앞에서 무너졌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전 애인에게 원망 한마디 못하고 그를 달래주며 헤어졌다.
그렇게 5년의 기다림 끝은 연애의 끝으로 막을 내렸다.
눈치 없는 날씨는 그날따라 너무 화창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씩씩하게 지냈다.
그저 결혼적령기가 지난 시점에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막막했다.
나를 지배한 것은 빨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해야 한다는 조급함뿐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할 때마다 두려웠다.
‘이 사람의 부모는 나에게 소리치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트라우마가 생겼다.
꿈에 전 애인의 어머니가 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꿈에서는 내가 그녀에게 소리친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고.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던 나는 사실 비극적인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무너져버릴까 두려웠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일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연애의 아픔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내 상황을 이해하기보단 이별이 대수냐며 다그쳤다.
그때 처음 알았다.
공감은 그 사람의 경험치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값이라는 걸.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품고 산다.
자신의 상처를 아무리 설명해도 그 고통의 크기는 나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아픔은 자신에게만 절댓값인가 보다.
공감은 상대값, 상처는 절댓값.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사람으로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모든 상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예행연습이니까.
다만 그 치유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이 서서히 0으로 향해가는 이 여정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이 글은 그 여정의 첫 번째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