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오는 길
34살, 초가을.
전 애인의 어머니가 나에게 소리를 지른 날, 나는 나를 잊었다.
5년의 연애 끝, 결혼적령기의 끝자락이었다.
서른 중반의 갑작스러운 혼자서기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잊을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때의 나는 당장 결혼할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에 묶여 있었다.
급하게 소개팅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상처뿐이던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천천히 서로를 알아갔다.
그는 정말 독특한 사람이었다.
가치관은 나와 정반대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화는 놀라울 만큼 잘 통했다.
나는 결혼에 조급했지만, 그는 결혼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시간이 달라서 멀어졌다.
그 이후에도 여러 사람을 만나보았다.
가치관도 잘 맞고 좋은 사람은 많았지만, 마음이 다시 열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를 그렇게 좋아했고 잊지 못했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사고 구조가 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늘 현상 너머의 구조와 본질을 먼저 보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사람들과 대화는 잘했지만, 정작 내가 진짜로 잘 맞는다고 느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혼에 조급하고 불안이라는 안갯속에 살고 있던 나에게 사람들은 말했다.
“결혼이 전부는 아니야.”
"세상에 남자는 많아."
"아직 늦지 않았어."
그러나 그 말들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말했다.
"결혼을 포기하면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상하게 이 말만은 마음 깊숙이 닿았다.
마치 숨을 되찾은 듯한 해방감이었다.
그때의 나는 단지 그를 좋아해서 다르게 들린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끝난 지금에서야, 나는 다시 생각했다.
왜 그의 말만은 달랐을까.
가치관이 그렇게나 다른데도 왜 우리는 그렇게 잘 통했을까.
그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그가 한 말은 조언도, 위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잊고 있던 사고 회로의 먼지를 털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되돌려주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사고의 구조는 감정처럼 쉽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나는 ‘결혼 적령기’라는 시간의 끝자락에 조급하게 묶여 있었다.
그 조급함과 불안 때문에 나는 평소의 사고 흐름을 잃고 있었다.
그는 내가 불안해하는 이유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래서 불안의 안개가 걷혔다.
나는 다시 나의 사고 회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마 그 순간, 나는 ‘그 사람’을 통해 다시 ‘나’를 만난 것이었다.
아, 이것이 ‘공명(共鳴)’이구나.
공명이란 감정이 같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생기는 울림이었다.
물리에서 공명은 두 존재가 같은 주파수를 가질 때 서로의 진폭이 커지는 현상이다.
사람도 그렇다.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두 사람이 만나면,
생각은 서로를 비추며 더 깊어진다.
그러나 공명은 언제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주파수가 어긋나면 울림은 멈춘다.
우리는 깊이 울렸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결국 서로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고의 결이 닮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사고의 결이 같아도, 가치관은 다를 수 있다.
가치관은 환경과 경험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했지만,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공명과 가치관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걷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사고 구조가 잘 맞는 사람을 만났지만, 결혼이라는 숙제 때문에 그를 놓쳤다.
그리고 그런 만남은 다시 쉽게 오지 않았다.
결혼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래서 결혼을 놓아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글을 쓴다.
사유의 결이 닮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며.
나는 아직, 내게 돌아오는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