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이 먼저라고 착각한다

태초의 자리에서

by 심연천문대

아담과 하와를 보고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을까.

단 둘 뿐인 환경이 만들어낸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게 된 건 아닐까.

사랑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들의 사랑은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주어진 조건이 빚어낸 감정이었을지 모른다.

선택지도, 비교 대상도, 대안도 없었다.

그것은 생존과 번식, 그리고 유대가 동시에 걸린 관계였다.

“당신 말고는 세계가 없다”는 조건에서 사랑은 필연에 가까웠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감정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것을 하나의 기본값으로 삼았다.


어쩌면 오랫동안 정략결혼이 유지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불과 한 세대 전, 우리 할머니들의 시대를 떠올려보자.
그 시절엔 모르는 사람과의 결혼이 자연스러웠다.
개인의 감정보다 살아가는 일이 먼저였다.
관계는 쉽게 끊을 수 없었고, 이탈의 비용은 컸다.

선택지는 “이 사람과 살아내기”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할머니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함께 살다 보니 정이 들었다고.

그렇게 살다 보니 결국 사랑이 되었다고.

그것은 체념도, 거짓도 아니었다.

그 역시 사랑이었다.

그렇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감정은 뒤따라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상황이 만든 감정을 사랑이라 불러왔다.

사랑은 그렇게 상황의 결과였다.

그 구조는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나 지금, 방향은 바뀌었다.
환경이 먼저이던 구조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전제가 되었다.


우리는 사랑을 결과로 배운 마지막 세대이면서,

사랑을 전제로 살아야 하는 첫 세대인지도 모른다.


결과였던 사랑을 시작 조건으로 삼으려 하니 더 어려워진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사랑이라는 제도의 전환기다.

이제는 사랑을 전제로 관계의 환경을 설계해야 하는 시대다.


문제는 그 설계가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어쩌면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랑을 오래 지탱할 구조를 아직 충분히 만들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정은 타오르기도 하고 식기도 한다.
그 식어가는 시간마저 관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사랑이 머물 수 있는 구조의 한 축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자리다.

결혼은 그 자리를 붙들어두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이 먼저라고 믿지만, 여전히 조건 속에서 사랑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그것이 처음부터 사랑이었다고 착각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아담과 하와가 처음 서 있던 그 조건 안에서 사랑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인간관계의 생존 전략: r과 K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