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 전하지 못한 마음

by 민돌

엄마는 평생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뒤로 미루고, 자식들의 삶을 위해 마음을 다해 살아왔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미대에 가겠다는 두 딸의 선택을 기꺼이 떠안아 끝까지 밀어주었고, 내가 이십 대 후반 갑작스럽게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마음속으로는 내가 떠나지 않길 바라면서도 끝내 나의 길을 막지 않았다. “가보고 싶으면 가야지.” 그 한마디는 늘 그랬듯, 나보다 나를 먼저 믿어주는 엄마의 방식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중학교 졸업 이후 공부를 놓아야 했던 엄마도 사실은 배우고 싶은 것이 많지 않았을까?

그 질문이 아주 자연스럽게 ‘모녀 어학연수’라는 조금 엉뚱하고, 조금 늦은 여정을 시작하게 했다.


40대에 접어든 나에게도 낯선 도전이었지만, 65세의 엄마에게는 더 큰 모험이었다. 출국 전날 밤, 엄마는 “내가 이 나이에 영어 배우러 간다고 하니 다들 신기하대”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연수 첫날, 한국어 한마디 못 하는 선생님 앞에서 엄마는 내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어린아이 같아서 웃음이 났지만, 동시에 가슴이 조여왔다.


엄마는 낯선 교실에서 더듬거리며 “Hello”를 내뱉었고, 단어 하나를 배울 때마다 눈을 반짝였다. 어느 날은 “나 오늘 ‘See you tomorrow’를 실수 없이 말했다!”라며 조심스럽게 자랑했다. 그 순간, 나는 엄마가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래 닫혀 있던 문을 다시 여는 중이라는 걸 느꼈다.


짧았던 한 달의 연수가 삶의 모든 것을 바꾸진 않았다. 엄마는 여전히 영어 문장을 막힘없이 읽지는 못했고, 우리는 금세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한 달은 생각보다 더 오래 남는 흔적이 되었다.

기타 동호회에서 팝송을 부르던 엄마는 “발음이 전보다는 좀 다르지?”라며 웃었다. 나는 그 변화가 사랑스러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엄마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는 순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벅찼다.


그 후 나는 다짐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엄마와 더 많은 기억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바쁘다는 핑계로 짜증을 내고, 못된 딸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 한번은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엄마가 “돈은 언제 벌려고 맨날 돌아다니니”라고 잔소리하면서도, 끝내 내 가방에 선크림을 챙겨 넣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늘 잔소리 뒤에 사랑을 숨겨두는 사람이고, 나는 그 사랑을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이번 어학연수는, 그 오랜 세월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너무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엄마는 그 작은 조각을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그 사실이 때로는 미안하고, 더 자주 고맙다.


어학연수를 앞두고 “내가 갈 수 있을까?”라며 망설이던 엄마는 결국 나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그 용기와 함께한 시간이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또 언젠가 엄마와 떠날 여행을 꿈꾼다. 그때는 조금 더 너그럽고, 조금 더 다정한 딸로 곁에 있고 싶다.

그리고 그 모든 바람의 시작에서, 엄마에게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함께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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