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경험을 통한 탐구
나는 종종 스스로를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떠오르지만, 정작 실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를 단순히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이 현상을 융 심리학의 개념인 *영원한 소년 원형(puer aeternus)*¹과 연결해 이해해 보려 한다. 이 원형은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책임과 제약을 회피하는 태도를 상징한다.
융(C. G. Jung)은 집단 무의식 속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패턴을 ‘원형(archetype)’이라 불렀다². 그중 puer aeternus(영원한 젊음)은 신화 속 헤르메스나 피터팬과 같은 상징으로 드러난다. 이 원형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과 상상을 좇으면서도, 현실적 뿌리를 내리는 데 저항하는 성향을 보인다.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Marie-Louise von Franz)는 『푸에르 에테르누스』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푸에르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상상하며, 현실에서 구체적인 책임을 지는 일을 지연시킨다. 그는 잠재적 가능성 속에서만 존재한다.”³ 이 설명은 내 삶의 여러 장면과 겹쳐진다.
내게 가장 뚜렷하게 각인된 제도적 경험은 공익근무였다. 병역 제도로 인해 나는 대체 인력으로 분류되었고, 이 과정은 곧 ‘나는 사회가 버린 사람’이라는 낙인처럼 작용했다. 관리나 돌봄은 부재했고, 또래 집단과 완전히 단절된 채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때 형성된 ‘제도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감각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로 굳어졌다. 이후 취업, 학위, 자격과 같은 제도적 관문을 회피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내 무의식은 그것들을 다시 상처를 재현할 수 있는 위협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 심리에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⁴의 패턴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행동하기 전에 이미 “어차피 실패할 것이다”라는 예측이 나를 멈추게 한다. 동시에 “왜 나는 제도로부터 기회를 얻지 못했는가”라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는 행동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다시 무력감으로 되돌아간다.
결국 내 삶은 무력감 → 분노 → 회피 → 다시 무력감이라는 악순환 속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현실의 성취 대신 가능성만을 붙잡으며 자존심을 유지하는, 전형적인 ‘영원한 소년’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영원한 소년 원형이 항상 부정적인 의미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 원형은 동시에 창의성과 상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나는 은둔과 자기분석 속에서 내면을 깊이 탐구할 수 있었고, 수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현실적 산출물로 이어지지 못했기에, 오히려 공허와 무력감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나는 영원한 소년을 단순한 족쇄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연구자로서 의식적으로 탐구해야 할 주제로 바라보고 있다. 내 경험은 더 이상 개인적 실패담이 아니라 사회적·심리학적 분석의 자료로 기능한다.
나는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무력감의 구조를 글로 기록하고, 공익근무 경험을 제도심리학의 시각에서 해석하며, 영원한 소년 원형을 내 삶의 구체적 경험과 대조하는 작업이다. 비록 작은 기록이지만, 가능성을 현실로 전환하는 증거가 된다.
내 상처는 사회 제도의 배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치유 또한 제도와의 새로운 연결을 필요로 한다. 나는 사회 전체를 바꾸는 거대한 혁명을 꿈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치유 과정이 곧 연구 결과물로 외부화될 때, 나는 더 이상 ‘버려진 자’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분석하는 연구자로 서게 된다.
영원한 소년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나의 연구 대상이자, 내 삶을 실험하고 기록하게 하는 원천이다. 내가 쓰는 글 하나하나가 곧 치유이자 학문적 탐구가 된다.
Jung, C. G. (1959).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Princeton University Press.
Ibid.
von Franz, M. L. (2000). Puer Aeternus: A Psychological Study of the Adult Struggle with the Paradise of Childhood. Spring Publications.
Seligman, M. E. P. (1975). Helplessness: On Depression, Development, and Death. W.H. Freeman.
Jung, C. G. (1959).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von Franz, M. L. (2000). Puer Aeternus: A Psychological Study of the Adult Struggle with the Paradise of Childhood. Woodstock, CT: Spring Publications.
Seligman, M. E. P. (1975). Helplessness: On Depression, Development, and Death. San Francisco: W.H. Free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