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일][12월30일]멈추는 순간 두려움은 시작 된다

삶의 전부...

100일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원고지 기준으로 3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자유로운 주제로 글을 쓰되 원고지 5페이지 분량 이상 쓰는 것이 규칙이었다.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원고지 매수 계산하는 사이트가 있었는데 나름 열심히 타이핑한 다음 복사해서 붙여 넣으면 3.5장 이었다.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제대로 쓰기 시작한지 100일이 넘었던 때라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기에 아이들 사진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꽤 많은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고지 5장은 한글이나 워드로 1/2 페이지 정도다. 블로그에 육아일기 쓰던 것을 쭉 끌어 붙여보았다. 정말 놀랍게도 3장이 겨우 넘는다. 블로그에 바로 글을 쓰다 보니 지금껏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을 쓰고 있었던 건지 몰랐다.


5장은 채우고 싶은 마음에 기존 문장에 수식어를 더 넣는다던지, 한 두 줄 더 채워 넣는 식으로 겨우 약속을 지켰다. 쓰다 보면 어떤 날은 금세 분량을 넘어간 날도 있고, 또 첫 문장에서 막혀 겨우겨우 채우는 날도 있었다. 지난 글들을 훑어보니 초등학교 때 일기 쓰듯이 하루 동안의 나를 되돌아보며 생각을 옮겨 적은 날은 술술 풀렸고, 매번 너무 일기 형식으로 가는 거 아닌가? 해서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 경우는 마지막 문장까지 힘들고 어려웠다. 아무 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쓰는 편이 낫겠지만 분량의 차이를 넘어 하루를 보내는 내 마음가짐도 달랐다. 내 마음, 의식, 생각에 대한 글로 시작하는 하루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멋스럽고 맛깔나는 잘 다듬어진 글쓰기가 아닌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내 마음을 한번 챙겨봐 주는 마음 가는대로 손이 가는대로 써지는 있는 그대로의 글쓰기다. 그래서 중반부터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하고 내 마음이 가는대로 글쓰기를 지속했다.


예를 들어 글쓰기로 시작한 하루는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을 대하는 내 마음부터 달라진다.

“승연아, 어른인 엄마도 가끔 이유 없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울고 싶을 때도 있는데... 우리 아가가 어딘가 불편한가 보구나... 엄마가 곁에 있어줄게. 네 마음이 편안해 질 때까지 꼬옥 안아줄게. 기억은 안나지만 엄마도 우리 아가만 할때가 있었겠지... 할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구나... 아가야, 네가 편해졌으면 좋겠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이가 이해를 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마음속 깊이 나의 마음을 느끼며 그리고 내 마음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글쓰기로 내 마음을 나 스스로 다독이기 시작하며 생긴 마음의 여유, 안정, 평화였다. 나에 대한 사랑, 내 아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


간혹, “너는 육아가 적성이라 그런거야~!” 라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나는 절대 육아가 적성인 사람이 아니다.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았었고, 지금도 마음 편히(?) 다른 생각하지 말고 아이만 키우라고 한다면 못할 것 같다. 회사 다닐 때는 애만 키우면 만사 걱정 없을 것 같았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게 딱 맞는 말이다. 그렇게 바라던 로망이었는데 내가 막상 아이와 온종일 있어보니 차라리 회사가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했다. 과거의 나도 보통 그렇듯 초보 엄마 시절 산후 우울증을 겪었다. 특히, 아이가 우는 것에 엄청 예민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이는 다 잘자고 잘먹고 방긋방긋 웃는 줄 알았다. 이런 내가 육아가 적성이라니...... !!!!!! 주변에서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 내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첫째 승윤이가 백일이 되기 전까지 밤 10시만 되면 울다 지쳐 잠들 때 까지 2시간 정도 자지러지게 울었던 그 때가 생각난다. 매일 해가 지는 것이 두려웠다.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화냈다가 사과했다가 방치했다가 또 다시 달랬다가 몸도 마음도 지쳐갈 때즈음 100일의 기적을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내 마음을 나 스스로 챙길 줄 알았더라면 몸은 똑같이 힘들었을지라도 마음은 더 편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육아가 너무 지치고 힘들었을 때 책을 찾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그나마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독서 밖에 없었다.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천권은 고사하고 몇 백 권도 읽지 못했고, 고전이나 인문학 책을 파며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내 상황에 맞게 육아와 집안일을 하며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있을 때만은 다른 생각이 안들었고, 책에서 이야기 하는 통찰, 지혜로 마음이 편해지고 다르게 볼 줄 아는 관점이 생겼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그 여운이 오래 가지 않았다. 몇 천권을 읽고 난 후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 때가 언제 올지 몰랐다. 아이의 성장속도는 LTE 급이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꼈다. 범인과 평민의 차이 같았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세상.


읽기를 넘어 쓰기 시작하면서‘어쩌면 지금과 다른 진짜 내 인생을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양식을 쌓았다면 글을 쓰면서는 내가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왜 이 것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내 마음과 소통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함께 성장하기)

내 마음을 돌보는 나만의 글쓰기로 시작을 하지만 외부와 소통도 분명히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표현한다는 것인데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독립된 개체이지만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만이 내 존재도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혼을 하고,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고 아이를 낳고 나를 성장시키며 살아가는게 아닐까? 또한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상황에 공감하며 나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인 일기는 노트에 직접 적고, 감사일기와 같이 함께 할 때 더욱 에너지가 커지는 글을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감사일기의 하나의 축이 감축육아이다. 감축육아는 감사하고 축복하는 육아 라는 뜻인데 감사일기를 통해 힘들었던 육아가 감사하고 축복하는 육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으로 더 많은 엄마들이 글쓰기를 통해 육아를 자아성찰의 발판으로 삼았으면 한다. 그게 바탕이 된다면 진정한 나의 성장도 이뤄질 것이기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엄마들이 글쓰기를 통해 생각과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가 나의 최대 고민이었다. 책쓰기의 도전도 고민해결의 방법 중 하나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지속하기란 더욱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를 어떻게 해 볼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일을 하면 성과를 내라!’ 는 말이 있다.


직원으로써 성과를 내면 회사가 발전할 것이고,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육아와 글쓰기가 만나‘성과’에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나 스스로의 자아 재발견, 자존감 상승, 성취감이 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육아가 좀 더 편해질 것이다. 아이 ‘ 때문에’ 희생되어지는 인생이 아닌 아이‘덕분에’성장하는 인생이 될 것이다. 자연스레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 말투가 달라진다. 아이 역시 건강한 몸과 마음,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자란 우리의 미래는 지금 보다 훨씬 발전될 것이다. 결국 엄마의 글쓰기의 최종적인 성과는 나로부터 시작하며 미래까지 이어진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에 살아 생전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시나리오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많은 엄마들이 큰 뜻을 품고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반드시 이루어 질 거라고 믿는다.


(지속성장하기)

나의 자존감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다음에는 평생의 과제로 지금을 기준으로 조금씩 더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 다이어트처럼 계속 관리해 주지 않으면 원래의 나로 되돌아가려는 요요현상이 있다. 그런데 현상 유지만을 위한 글쓰기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물론 흥미를 위한 글쓰기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놀이를 통한 학습을 하듯 글쓰기 걸음마 단계인 우리에게는 재미가 필요하다. 즐거워야 지속할 수 있다. 다이어트도 55kg 이 목표였다면 목표를 달성하고 다서는 또 다른 목표가 있어야 하듯이 말이다. 더 이상 몸무게 감량이 아니더라도 근육량을 늘린다던지, 라인을 만든다던지.. 등등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목표 말이다.


글쓰기도 그런 것 같다. 나를 되돌아 보고,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자아성찰의 글쓰기가 자리 잡았다면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어땡 작가로서의 도전을 시작으로, 출간기획서 작성 후 출판사 문 두드려 보기, 브런치 북프로젝트 응모, 책쓰기의 도전으로 계속해서 확장되어 글쓰기가 이어졌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마음 속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오히려 실패 없는 성공은 내가 대기업에 한 번에 입사했을 때처럼 소중함이 덜하고 고마운 걸 모른다. 실패의 과정은 결과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실패를 즐기는 것 같다. 오히려 한 번에 성공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쓰기는 내 삶의 일부를 넘어 내 삶의 전부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어쩌면 종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존재인 신을 믿는 마음, 신념이 글쓰기를 통해 보이지 않는 내면의 나를 믿는 마음과 같을 것 같다. 두 개의 차이점은 종교는 신을 믿는 것이라면, 글쓰기는 내 안의 ‘나’를 믿는 것이다. 종교도 그렇듯 글쓰기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글쓰기를 통해 사고를 확장하니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까지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를 멈추면 두렵다!

나를 잃게 될까봐.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언제, 어디에서나 가능한 것이 글쓰기니까.

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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