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리코더 레슨을 받으러 평생교육원에 간다. 2주 전 감기로 빠져서 조금 일찍 가서 옆 방에서 연습을 하려했지만, 흑흑. 레슨곡이 아닌 유행가 멜로디만 연습했다.
똑똑똑, 한참을 불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허걱! 교수님이 방긋 웃으시면서 컴온 컴온, 얼른 정리하고 옆 교실로 넘어오라는 손짓을 하신다.
"교수님 저 뒤돌아서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보신거에요?" 아까 슬쩍 다른 분 수업하시는걸 보고 온 터였다. 원래는 30분 후가 내 차례인데, 일찍 온 내 등장을 어찌 눈치채신걸까? 여기 연습실 방음 하나도 안 되는구만.
"제가 레슨 마치고 복도로 나갔는데 리코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이상하다. 이 시간대에는 리코더 하는 분이 없는데 싶어 창문으로 보니 뒷모습만 봐도 선생님이셨어요. 그런데 무슨 곡 연습하고 계신거에요?"교수님께 요즘 최신 유행하고 있는 가요 밤양갱 리코더 버전을 유튜브를 틀어 보여드렸다.
"오, 저도 이 노래 들어 봤어요." 교수님이 큰 흥미와 관심을 보이신다.
"이 분, 전공자인지 일반인인지 얼굴이 안 나와서 모르겠어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교수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신다. "딱 봐도 전공자인데요. 아마도 한예종 학생 아닐까요?" 어허, 그런가? 난 잘 구별하지 못하겠다. 엄청난 반음계를 소화하는 저 유연한 손가락을 보면 일반인은 아닌듯 싶은데 말이지.
"그나저나 이 곡, 왈츠풍에 멜로디가 중독성 있네요, 리코더로 불었을 때 아주 좋은걸요?" 교수님과 레슨곡은 아주 조금, 이 곡은 무척 많이 연습했다. ㅋㅋㅋ 집에 와서도 키보드로 다양한 조성으로 피아노도 쳐 보았음. 무난하게 다장조도 좋다.
4월 5일 금요일
비비의 밤양갱. 사실 이 곡은 어제 음악부터 어떤 아이가 숙제로 내준 곡이다. 오늘 음악 시간에 어김없이 그 아이가 외친다. "자, 선생님 숙제 검사 시간입니다. " 귀여운 어린이. 은근 이게 연습 동기 유발이 된다. 어제 레슨에 가서도 요새 배우는 바로크 곡보다 유튜브 틀어놓고 이 곡을 죽어라고 연습했다.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이 부분이 진짜 헛갈림. 리듬이 왜 이리 어렵냐!
원 곡은 샾이 네 개 붙은 마장조곡이다. 파도솔레 네 개의 반음을 연주해야 하는 극악난이도. 아, 머리가 아프네. 유튜브에서는 첫 음은 '시' 로 시작한다. 어제 레슨 중에 교수님이 완전 무심히 하신 말씀 중에 금광이 보였다. "음, 편안한 방법이 있어요. 그냥440헤르츠 말고 415헤르츠로 연주하시면 되겠는데요? 반음차이니까요. "
교수님, 굿 아이디어. 천재 만재시다! 알토 리코더 440에서는 도 운지가 415에서는 시임. ㅋㅋㅋ 이리 간단한 문제를 고민하다니. 갈색 단풍나무는 440헤르츠, 노란 회양목은 415헤르츠다. 노랭이로 연주하면 되겠군!
오늘 아가들이 쌤 처음 들은 곡 열심히 노력했다고 박수를 쳐 주었다. 친구들, 사실은 페이크였어. ㅋㅋ 오늘 내게 이 곡 연습하라고 한 아이가 "다음 숙제는 □□□입니다. 연습해 오세요." 하길래 두 귀를 막고 "안 들려요. "를 계속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