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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Apr 09. 2024

부캐는 곰쌤

 말랑 곰돌이로 추억 소환

"쌤, 여기 선생님 친구 데려왔어요!" 4월 한 달은  교실이 아니라 특별실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집에서부터 곰돌이를 가져와 교실에서 과학실까지 가지고 온 그 정성, 말랑말랑 고무로 만든 말랑 곰이 참 귀엽다. 2년 전 신입생으로 만났던 꼬마들이 이제는 늠름한 3학년이 되었다.

1학년을 맡았던 해 내 별명은 '곰쌤' 이었다. 그때 한참 유재석이 유산슬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도 부캐를 만들었다. 백일동안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곰돌이로 말이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내 앞에서 곰돌이 모양의 하리보 젤리를 먹으며 "꼬리부터 먹을까요, 머리부터 먹을까요?" 하며 깔깔대기 시작했다. 곰탕집에서 주말에 외식을 했는데 선생님 친구를 먹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고도 하고 말이다. 곰탕은 소고기국이야, 어린이들.

나를 고구마를 좋아하고 맨날 리코더를 부는 곰 선생님, 본인들은 아가 곰으로 설정하여 곰돌이 외전으로 그림책을 그려오기도 하고  아가 곰 학교놀이에 나를 겨울잠 자는 곰돌이 쌤 역할을 하라고 끼워주기도 했다.ㅋㅋ

내가 담임했던 아이들을 교과 전담으로 만나니 1학년 쪼꼬미 모습을 탈피하여 늠름하게 자란 모습에 감탄할 때도 있고,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표정도 살짝살짝 발견할 때도 있어서 기분이 색다르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아이들은 쪼물딱 조물조물 말랑곰을 한 번 만져보겠다며 줄을 선다. "이거 터지면 말랑 곰 동물 병원 가야 해. 이거 가져온 주인 엉엉 울 수 있어. 조심조심 살살 만지거라."

"선생님, 이거 만지니까 보들보들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거 같은데요?" 한 아이가 이야기한다. 10살이라고 해서 스트레스가 왜 없겠니. 친구는 나보다 키가 쑥쑥 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키가 작을까, 동생은 왜 내 말을 안 들을까, 학원 숙제부터 해놓고 게임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왜 그리도 듣기 싫을까. 그래도 이렇게 모두 한바탕 웃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지? 오랜만에 곰쌤이란 옛 별명을 들으며 말랑이 곰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나 역시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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