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카라바조의 작품들을 만났다. 이번에 한국에 온 그의 작품 중 가장 마음에든 작품은 바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었다. 주인공 다윗의 얼굴을 보면 승리를 하고도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다. 그의 눈썹을 본다. 뭔가 만족스럽지가 않다. 적장인 골리앗의 죽음을 오히려 동정하고 안쓰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왜 승리를 하고도 기쁜 표정이 아닐까? 다윗의 얼굴은 뭔지 모르는 회한이 서린 표정이다. 가만히 보니 칼을 잡고 있는 얼굴이 낯익다. 골리앗 역시 그렇다. 알고보니 두 인물이 모두 본인의 어린 시절과 나이 든 시절을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은 그가 1606년 살인을 저지른 후 그렸다고 한다. 미소년의 얼굴은 과거의 순수했던 모습을 뜻하고 추악한 골리앗은 살인죄를 범한 범죄자가 된 본인을 나타낸거다. 그러면서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나에게 왜 그랬냐면서 후회를 하는 것 같다. 이런 천재같으니라고.
'너 하고 싶은 말 못했다고 또 이불킥 하고 있지! 나를 봐. 깡패처럼 살았더니 사람도 죽였잖아. 그 일을 얼마나 후회하는데. 너 오늘 그 사람과 한 판 안 붙길 참 잘한거야. ' 그림 속 주인공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그림이 과장되고 사실적이어서 좋다. 감정적이고 연극적이어서 편안하다. 현실에서 내가 차마 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대리 만족을 얻는다.
유명한 이 작품 앞에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어 사진 찍기조차 어려웠다. 이번 전시에서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이 작품이었다. 실제로 이 작품이 제일 끝 전시물이라 바로 옆 방은 카라바조의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설명하는 출구였다. 그래서 바로크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귀에 익은 멜로디는 바로 텔레만 비올라 협주곡이었다. 진짜 끝인건가 아쉽다 싶어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카라바조의 작품을 하나라도 소장한 미술관이라면 그의 그림을 컬렉션 소장품 중 대표작으로 내세운다고 하니 실제로 뿔뿔이 흝어져 있는 그의 작품을 찾아 보물찾기를 하듯 여행하는 '카라바조 투어'도 인기라고 한다. 실례로 어떤 분이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에 갔는데 카라바조의 그림이 외국의 다른 곳으로 투어를 가서 관람을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었다. 더우기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 동시대 미술가들,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니 이건 꼭 가야하는 전시였다. 이번 전시에서 만난 카라바조의 작품 열 점은 말 그대로 어마무시한 양이었다.
사람들이 절에 가는 건 부처님을 뵙고 싶어서다. 그러나 대웅전은 단번에 나타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얼굴을 가진 사천상을 지나 산길을 굽이 굽이 돌아 탑도 만나고 언덕도 지나야 비로소 절의 가장 핵심 공간, 심장부에 모신 부처님을 뵐 수 있다. 아마도 지혜와 진리는 산길과 오르막을 걸으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감정적으로 흥분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카라바조 전시의 제일 마지막에 이 작품을 큐레이팅해 놓은 것도 이런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