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도 1학년 때 한글 미해독 어린이였지!

by 리코더곰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공부에 큰 소질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첫날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만난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본인 이름 석자를 칠판에 쓰시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자, 선생님 이름을 크게 읽어 볼까요?' 칠판에 적힌 담임 선생님 성함을 아이들이 소리 내어 자신 있게 읽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정말 큰 충격에 빠졌었다. 요즘 말로 멘붕이었다. 나만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까 부끄러워 얼레벌레 아이들이 말할 때 립싱크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가서 울며 말했다. "엄마! 우리 반에 한글 모르는 사람 나 밖에 없어!!"

삼 남매 중 막내여서 스파르타 식으로 공부시켜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셨던 우리 어머니는 내 이름 석자만 가르치시고 나를 입학시키셨다. "그럼! 지금부터 배우면 되겠네!" 엄마는 내게 걱정하지 말라며, 신문지를 펴놓고 한글공부를 시작하셨다. 내 안의 학습 의욕이 활활 불탔던 상황이라 한 마디 한 마디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나는 그때 '공부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고, ' 나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자신감을 경험한 것 같다. 글자를 읽을 수 있으니 책도 읽을 수 있고 선생님의 질문에 답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학교 다니는 게 점점 재미있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때보다는 6학년 공부가 더 즐거웠고, 중학교 때보다는 고등학교 때 공부가 더 쉬워졌다. 성적도 점점 올라서 고3 때 성적이 제일 좋았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극문과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에는 참 괴롭긴 했다. 수학 시간이나 물리 시간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고, 선생님 말씀도 잘 알아듣지 못해서 힘들었다. 칠판 가득 쓰여 있는 공식은 내가 다 이해도 못했는데 다음으로 금방 금방 넘어갔다. 중1 때 내 수학점수가 68점이었는데 사실상 중고등학교 내내 수학만 열중해서 공부했어도 나는 수포자였고 수학은 노력으로 극복이 안 되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에도 넓이나 부피, 이런 것을 배울 때 혼자 끙끙대며 못 풀어서 아이들이 집에 간 뒤에 '나머지 공부'를 한 적이 많았다. 내가 남들보다 부족해서 친구들 다 집에 간 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처량하고 서글펐다. 나의 담임선생님은 본인 시간을 더 들여서 애써 주셨지만 말이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학습격차가 생긴 어린이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방과 후에 남아서 부진아 지도를 한다. 이름하여 '점프업'. 배움이 느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하게 한다. 최대한 그 아이들이 즐겁고 신나게 공부를 접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점프업 부진아 지도반의 명칭을 공부 느낌 안 나도록 '동요 동시반'으로 지었다. 한글 보드게임도 하고 책 만들기도 하고, 신나는 동요도 불러 가면서 한글 지도를 해보려 한다. 무엇보다 '나는 공부를 못해서 남아있다'라는 슬픈 느낌을 우리 반 아이가 안 받았으면 좋겠다.


내일은 우리 반 '동요 동시반' 아이들과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필사해 보고 노래도 불러 봐야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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