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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un 16. 2023

딴소리는 나의 힘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최고의 무기

십 년 만에 맡은 교과 전담, 반마다 모두 조금씩 미묘하게 다른 수업 분위기에 늘 긴장이 된다. 올해는 5학년 영어를 가르치는데 일주일에 3번을 들어가다 보니 아이들 얼굴도 특성도 많이 파악하게 된다. 아이들의 사교육 정도에 따라 수준 차이가 극명해서 어떤 아이들은 2, 3학년만 되어도 해리포터와 같은 영어 원서를 줄줄 읽어내지만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알파벳 대소문자도 겨우 구분하는 정도이다. 따라서 학기 초부터 계속 '영어는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교과서 진도 이외에도 팝송이나 게임, 요즘엔 유튜브 영상도 수업 시간에 많이 이용한다.

의욕만 넘치던 초임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수업목표 달성을 위해 40분이라는 시간을 밀도 있게 채울까 무척 고민했던 것 같다.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영상, 파워포인트 자료를 준비하는 게 좋은 교사의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내일 수업 준비가 되지 않으면 7~8시까지 퇴근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시선을 확 붙잡는 방법은 다른 어떤 방법이 아닌 나의 딴소리라는 것을! "아! 진도 나가야 돼서 이 이야기는 시작하면 안 되는데. 고민이네"로 시작하면 안드로메다로 가 있던 아이들의 멘털이 즉시 돌아와서 똘망똘망 버전으로 바뀐다.

요즘은 각 반에 들어가서 소위 '딴소리'로 수업을 시작하는데 이게 은근 동기유발의 효과가 있다. 예를 들면 뒷칠판에 아이들이 쓴 동시나 그림을 보고 칭찬 샤워를 하는 거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삐딱한 어린이들이 집중 공략 대상이다.


 "우리 땡땡이 너무 예민하죠? 영어 시간엔 좀 어때요?" 이렇게 담임 선생님이 먼저 걱정되셔서 내게 교과 수업 참여 태도를 확인하는 어린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칭찬할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컴퓨터로 쓴 것 같은 예쁜 글씨체, 웹툰화가 뺨치는 멋진 그림 솜씨, 하다못해 음악에 리듬을 맞추누 손뼉 치는 박자 감각에 이르기까지! 영어 시간에 칭찬을 할 거리는 비단 영어 발음과 단어 실력뿐이 아니다. 세히 살펴보면 누구는 흥에 겨워 신명 나게 춤을 잘 출 수도 있고 누구는 친구들이 모르는 팝송을 들어봤을 수도 있다.


난 안테나를 세우고 이런 주변 정보에 신경을 기울인다. 그리고 영어 시간에 예시문으로 그 반 아이들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눈빛이 바뀐다.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너무 고맙게도 세상 삐딱한 예민녀 어린이들도 영어 시간에는 순수함 가득한 귀염둥이 열두 살 모습으로 공부해 준다. 다 큰 어른도 칭찬이 좋은 법이니. 역시 정공법보다는 에둘러서! 공부하는지도 모르게 수업에 집중하게 하는 게 하는 딴소리가 최고의 동기유발 방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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