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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un 23. 2023

진짜 위로와 가짜 위로

느리게 걸으며 나 자신을 살피기

현임지로 전근 온 후 제일 마음에 든 점은 학교 뒤에 나지막한 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시 지정 '아름다운 산책길'에 선정되기도 한 동네의 명소이다. 소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많아 봄에는 향긋한 꽃향기가 가득하고 여름에도 아카시아 그늘이 우거져 모자도 필요 없고 아주 시원하다.

아침 일찍 산책을 하면 싱그러운 나무 냄새에 기분이 좋다. 특히 서울에 살면서 딱따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걷기 편하도록 나무로 데크길을 만들어 놓아서 운동화에 흙이 묻지도 않고 발을 헛디딜 염려도 없다. 둘레길을 왕복하면 4-50분 정도가 소요된다. 


학기 초. 올해는 기필코 운동을 해보리라 결심하고 학교 뒷산을 최대한 많이 가보려고 마음먹었다. 물론 매일 등산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살짝 감기 기운이 있어 산에 갈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걸음을 돌려 산으로 향했다.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니 살금살금 걸어 보기로 한다. 천천히, 한 걸음 한걸음  몸을 의식하며 발을 내딛는다. 여기가 내 발바닥이구나, 어깨가 혹시 뭉치지는 않았나, 내 몸 구석구석 어떤 상태인지를 스스로 '바디스캔' 해본다.

온몸에 에너지가 넘칠 때에는 빠른 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힘차게 한걸음 두 걸음 마치 춤을 추듯 움직일 수 있지만 오늘은 힘이 없으니 그냥 편안히 걸어 보려고 한 것뿐인데 느리게 걷다 보니 늘 다니는 공간도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니 온몸의 감각이 더욱 살아나는 것 같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에도 시선이 머무르고 새벽에 내린 가랑비에 촉촉이 젖은 흙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바쁘게 걸음을 옮길 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연두색 새로운 잎사귀도 예쁘게 보여 몇 번이나 사진을 찍게 된다.


느리게 걸으니 피톤치톤 가득한 소나무 향기도 더 진하게 느껴진다. 내 몸에 집중하고자 늘 가지고 다니는 블루투스 이어폰도 꺼내지 않았다. 음악을 틀지 않으니 산새들과 뻐꾸기 소리도 충분히 배경음악이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문요한 저)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는 위로를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진짜 위로는 우는 아이를 안아서 진정시키고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 차분히 물어주고 공감해 주는 tender loving care를 말한다.


가짜 위로는 즉각적인 쾌감을 주지만 진짜 위로는 안정감과 위로를 주는 '느린 위로'라는 것! 폭식이나 마약은 가짜 위로이고 운동, 산책, 뜨개질 등은 진짜 위로에 해당한다.

컨디션이 별로인 오늘, 난 나 자신에게 나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돌봐주는 '아침 산책'을 선물해 주었다.

느린 걸음으로 숲 속을 거닐며 그동안 찌뿌둥한 내 몸에 관심을 가지고 진짜 위로를 해 준 오늘, 티라미슈 이크보다 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보다 더 좋은 선물을 나 자신에게 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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