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리코더가 내 마음에 들어온 이후 리코디스트 남형주의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연주는 부드럽지만 강했고 유연하면서도 힘이 넘쳤다. 나도 그런 단단하면서도 평온한 소리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뿐 아니라 공연장에서 만난 그의 소리는 더욱 멋졌다.
2023.7.25. 화요일 저녁, 신사동 리코디아 아트홀에서 남형주와 친구들의 바로크 음악 공연을 만났다. 지난주 일요일 인천문예회관에서의 공연에 이어 이틀 만에 만난 그는 완전히 다른 색깔을 옷을 입고 우리를 맞이했다. 악기도 다른 악기, 시대적 특징도 다른 시간, 360도 새로운 레퍼토리를 펼쳤다. 오로지 같은 점은 단 하나, 바로크 첼로 및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신 김상민 선생님이 또 출연하신다는 것 정도!지난 일요일이 대중적으로 친밀하고 익숙한 곡들을 기반으로 한 곡들로 구성되었다면 이번 공연은 남형주 연주자가 일본 교환 학생 시절 만난 쳄발로 연주자와 함께 300년 전 바로크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어제 리코디아 아트홀에서 우연히도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그분은 바로 한국바로크악기의 박광준 과장님이시다. 지난 두 번의 방문을 통해 목관 악기를 구입한 인연으로 박광준 과장님 옆에 앉아 생생한 바로크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분은 자타공인 고음악의 살아있는 백과사전 같은 분으로 어떤 질문에도 거침이 없이 전문 지식을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술술 해설해 주셨다. 완전 계 탄 거다. 아! 이런 행운이 나에게 오다니.
한국에서 리코더로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있는 사람도 손에 꼽을 것이고, 단독 공연에 이렇게 유료 관객이 꽉꽉 들이차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고, 그 와중에 쳄발로 전문 반주자가 남형주 님이 일본 교환학생 시절에 만나 함께 공부하고 듀오 콘서트를 열었던 '타케오카 코헤이'님이라는 사실은 정말 일이 될라고 하니까 되는구나 싶은 지점이었다. 이 공연에 수많은 시간 고민하여 프로그램을 짜고 대관을 하고 심지어 팸플릿까지 손수 만들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젊은이는 잘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잘 될지 너무 기대된다 싶었다.
첫 곡은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헨델의 HWV.377 작품이었다. 나 또한 이 곡을 레슨 시간에 연주해 본 적이 있는지라 애정이 많은 곡이었다. 뒤이어 마르첼로, 텔레만까지 우리가 아는 유명한 바로크 리코더 곡들의 연주가 이어졌다. 이어서 쳄발로의 독주곡들, 프레스코발디의 100개의 선율을 묶은 파사칼리아와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 가단조 BWV.894 도 이어졌다.
인터미션이 끝난 이후 연주한 르벨의 11번째 소나타는 프랑스의 바로크 음악으로 화려한 무늬의 비올라 다 감바의 통주저음, 쳄발로의 챙챙한 소리, 소프라노 리코더의 조화가 참 잘 어우러졌다. '나,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은 바로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듯, 살짝살짝 리듬을 타며 미소 짓는 남형주 군의 모습은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표정이었다. 다 같이 둥글게 손잡고 서서 춤을 추는 느낌을 주는 이 곡은 처음 들었지만 너무 예쁘고 계속되는 리듬이 은근한 중독성을 가져다주었다. 요즘말로 하면 유행가의 후크송 부분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곡은 메롤라의 샤콘느였다. 샤콘느는 원래 캐논처럼 계속되는 춤곡인데 두 번째 박에 강세가 있는 단악장 형식의 곡이다. 이 곡을 연주할 때에는 한예종 리코더 전공 동기의 방지연 연주자와 함께 했는데 두 명의 악사가 펼치는 원시성 가득한 문답형식의 주거니 받거니의 향연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방지연 연주자는 무척 유명한 목관 리코더 전문 메이커 메크사 주최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여 국위를 선양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이후 독일의 뉘른베르크로 유학을 떠난다고 하니 이번 공연이 남형주 군과의 듀엣 무대를 보는 것이 얼마나 귀한 기회인지 모르겠다.
위의 샤콘느가 소프라노 리코더로 연주했다면 이어지는 크반츠의 트리오소나타 다장조 Trio Sonata in C major, QV2:Ahn.3 작품은 알토리코더의 합주가 돋보였다.
먼저 방지연 연주자가 시작하고 남형주 연주자가 뒤이어서 나오는데 이건 정말 말이 안 되게 너무 잘하는 것이었다. 아! 한예종 리코더 전공의 위엄이라니! 4개의 악장 Affettuoso-Alla vreve-Larghetto-Vivace까지 끝나고 남형주 연주자를 보는데, 이건 뭐, 나 여기에 오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 하는 표정이었다.
앙코르곡은 마르코 우첼리니의 라 베르가마스카. 이 곡을 소개할 때 남형주 연주자가 너무 빨리 말해서 못 알아 들었다. 공연이 다 끝난 후에 옆에 계신 박광준 과장님이 말씀해 주셔서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있었다. 두 대의 소프라노 리코더의 완벽한 화음! 이게 바로 리코더 공연이다, 여태까지 보았던 공연은 잊어라! 최고의 연주자들이 준비한 앙코르곡은 확실히 달랐다. 박광준 과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사실 이 곡은 바이올린과도 함께 연주하는 곡이라고 한다.
오늘 공연을 보면서 내 안에 음악이 주는 기쁨과 평화, 그리고 즐거움이 얼마나 가득한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음악은 마치 내 인생의 아주 오래전부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미 나는 멜로디의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대여섯 살 때부터 음악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신나는 멜로디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졌고 한 번 들은 음악은 어떤 멜로디라도 다시 재생할 수 있었다.
마지막 앙코르곡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집에 돌아오는 길, 음악 덕분에 울적했던 기분이 사라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즐거운 음악 들으며 춤추면 되는 거지!' 싶었다. 리코더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남형주 군, 좋은 연주 들려주어 진심으로 고마워요. 덕분에 행복한 시간 보냈답니다. 늘 멋진 연주 들려주세요. 계속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