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간 자리에 인성이 남는다

최악의 손님과 아이의 위로

by 별틔

“사장님, 기분 좋게 잘 지내고 나왔는데 이렇게 뒤집어씌우시니 어이가 없네요.“ 분노와 허탈감이 치밀어 올랐다.

작년부터 단독주택 한 층을 단기 임대로 운영하고 있다. 한 달간 머물고 간 손님의 문자다. 냉장고 1층 바닥을 온통 뒤덮고 있는 알 수 없는 끈적한 국물의 정체. 밥솥에 선명하게 긁힌 자국, 검은 오염이 30분을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버려버린 컵, 집안 곳곳에 발 디딜 곳 없이 날아다니는 긴 머리카락의 뭉텅이들, 모든 오염이 다 묻어 있는 변기, 검게 변해버려 절대 닦이지 않는 세면대 모서리, 머리카락으로 꽉 막힌 세면대... 제멋대로 옮겨 놓고는 제자리로 두지 않은 가구들... 흰 커튼의 오염...

내가 아끼던 원목 수납장도 부서져 버렸다. 정말 모든 곳에 흔적이 있는 어마어마한 손님들이었다. 그동안 가족 단위로 보통 이사 날짜가 맞지 않거나 리모델링 공사를 해야 하는 분들이 오셨기에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오히려 덕분에 깨끗한 곳에서 잘 머물고 간다며 선물과 편지를 두고 가신 따듯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계셨던 분들이 얼마나 감사했던 건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역대급 진상 손님이었다.

그래, 어느 정도 사용감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래서 좋게 인사하고, 보증금도 바로 보내드렸다. 소중한 리뷰를 부탁하며 커피 쿠폰도 보냈지만, 리뷰는커녕.

날 진짜 화나게 한 건 청소를 본격적으로 하러 간 주말,

싱크대 하부장을 열어 본 순간이었다. 싱크대를 열어보니 한쪽이 빠져 있는 호스와 물이 샜는지 바닥에 흥건한 물과 썩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썩어버린 도마와 쟁반. 물이 새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는지 티슈가 있었다. 당연히 프라이팬과 냄비에도 음식 먹은 얼룩들이 그대로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싱크대에 물이 언제 샜었는지 말씀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곰팡이로 도마와 쟁반이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혹시 청소하면서 훼손된 물품들이 더 나오게 되면 청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머물고 계시면서 원상 복구할 수 없게 훼손된 부분은 비용 청구할 수 있다고 미리 공지된 부분이었다.

실수였다. 처음 예약할 때부터 '싸해서' 남편과 안 그래도 걱정했었는데, 역시나였다. 예약할 때부터 모든 원칙을 무시하고 무리해서 요구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싱크대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도, 자신들에게 뒤집어씌운다고, 한 달간 머물고 간 사람한테 이런 걸 왜 청구하는지 모르겠다며, 청소 비용 5만 원에 다 포함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이야기했다.

아. 후회했다. 애초에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었다면 머물고 간 자리가 그럴 리가 없었다. 결국 '마음 상하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말로 급하게 상황을 마무리해야 했다.

머물다가 간 자리엔 인성이 남는다. 너무 속이 상해 씩씩거리며, 아니 사실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고 울컥한 스스로가 더 싫어 눈물을 얼른 삼켜버렸다.

아침 일찍부터 함께 나와 저녁 9시까지 청소를 하는 동안 아이가 심심했을 텐데도 찡찡대지 않고 잘 기다려주어 미안하고 고마웠다. 아이는 내게 말해준다.

“엄마,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요? 그 사람들 진짜 너무하다, 그치? 어쩌면 이렇게 더럽게 쓰고 갈 수가 있어. 너무하다 진짜. 엄마 신경 쓰지 마요. 괜찮아. 우리한테 과자 주고 간 좋은 분들도 있었잖아요.”

아이에게 엄마를 위로하게 만든 상황은 미안했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며 괜찮아졌다. "짜식... 고맙네."

그동안 머물고 가신 많은 가족분들께 내가 늘 마지막 인사로 드린 말이 있다.

“머물고 가신 자리를 보니 아마도 정말 좋은 분일 것 같아요. 곳곳에 남겨진 배려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저희와 인연이 되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다복한 가정에 늘 평안과 행복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 동안 무너진 인류애를 끌어올리며,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되새긴다.

“우주야! 우리는 우리가 머문 곳에 배려를 남기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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