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있어요~~~
설마 나를 잊은건 아니겠죠?
농담이예요.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이 나를 잊을리 없고, 나도 그래요.
아 참 그러고 보니 내가 없는 동안 예쁘고 착한 강아지 베어가 가족이 되었더라구요.
잘하셨어요. 그 놈 참 예쁘더라구요.
이 곳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늘 따뜻하고 행복한 곳이예요.
언젠가 우리 가족들 모두 이곳에서 저와 함께 영원히 행복할거라서 기대하고 있어요.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다가 오세요.
음...
오늘부터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가끔씩 편지를 쓰려고 해요.
요즘 아빠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엄마는 여전히 바쁘신지? 건강하신지?
민정이 누나는 얼마나 더 예뻐졌는지?
이쁜 민아는 또 얼마나 아름답고 마음이 고운 아가씨가 되었는지?
나 대신 큰아들이 되어 준 윤준이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막내동생 학준이는 군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게 참 많아요.
그래서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편지로 보내려고 해요.
답장은 안해도 되요.
답장하지 않아도 저는 다 알거든요. 모두들 어떻게 지내는지.
그래서 오늘은 처음 편지를 쓰는 거니까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두서없이 해보려고 해요.
생각해보니까 내가 여기에 온 시간이 꽤나 많이 지났더라고.
20년이 되었더라구.
2004년 11월 12일 그곳을 떠나서 11월 14일 이곳에 왔으니까 벌써 20년이 되었어요.
그 사이 젊고 멋있었던 아빠는 주름도 많아지고 좀 늙으신거 같지만 여전히 운동 좋아하시고 열정적이시고,
엄마는 조금은 키가 작아지신거 같아요. 민정이 누나랑 키가 비슷하던데.
그런데 엄마는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지시고, 병원도 많이 가시고, 여전히 약도 자주 드시고.
민정이 누나는 와우~ 정말 대박이예요. 못하는게 없는 우리 민정이 누나.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서 커피 머신을 다루기도 하고, 그림책도 냈죠. 올탱이 가족, 우리집 올탱이.
요즘은 화가가 되어서 프랑스 파리 올림픽 기간 동안에 파리에서 열리는 장애인 화가 국제전시회에도 참여한다고 들었어요. 정말 대단해요. 역시 우리 누나는 세계 최고의 누나야. 민정이 누나 화이팅!
민아는 정말 예뻐졌어요. 아마 아빠가 민아 시집 안보낼려고 할거 같아요.
누굴 닮아서인지 이쁘고, 똑똑하고, 멋있고, 마음도 따뜻하고, 일도 잘하고. 뭐 하나 부족한거 없이 너무 잘하고 있어서 조금은 부럽기도 해요. 요즘은 스위스 출장 준비한다고 매일저녁 야근에 밤샘에 고생하는거 같더라구요. 건강 잘 챙기면 좋겠는데, 아마도 민아는 지가 알아서 잘 할거예요.
그리고 장남의 자리를 넘겨받은 사랑하는 우리 동생 김윤준. 미안하다. 형이 집에 있었어야 했는데 어쩌다보니, 너에게 장남의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네. 그래도 너무 부담가지지 말어라.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가족들 모두가 함께 마음으로 사는 거니까 혼자 고민하거나 괜한 큰아들, 장남이라는 그런 생각은 하지 말기를.
윤준이는 이제 대학 마치고 하고 싶은 공부도 더 하고 취업도 하고 멋있는 청년이자 가장으로 성장할 걸 믿으니까 형이 별로 걱정은 안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집 막내 학준이. 늘 통통하고 귀여운 모습만 보다가 요즘 보니까 아주 멋있는 해병대 장교가 되어서 이제 12월이면 대위 계급장을 달고 진급하겠네. 멀리서 혼자 떨어져서 군 생활 한다고 고생이 많다. 니가 그렇게 군 생활 하는거 보면, 옛날 아빠가 민정이 누나랑 나랑 엄마랑 같이 백령도에서 살던 때가 생각나기도 한다. 우리 학준이는 건강하게 군 생활도 멋있게 하고 멋진 대한민국 해병대 장교로 성장할거라고 믿는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빠, 엄마, 민정이 누나, 민아, 윤준이, 학준이 그리고 새로운 가족 강아지 베어. 이렇게 우리 가족들 모두 잘 지내고 있어서 너무 고마워요. 덕분에 나도 여기 잘 있어요.
내가 태어나던 1993년 9월 21일
그날 엄마 아빠는 어땠어요?
저는 기억이 별로 없어요. 엄마 뱃속에만 10개월 가까이 있다가 세상으로 나왔는데 처음에는 울음밖에 안나왔어요. 너무 이상했거든요.
태어나 보니 백령도 라는 섬이더라구요.
아빠는 해군사관학교 졸업한 해병대 장교. 아마도 제 기억에 중대장을 하고 계셨던거 같아요.
엄마는 백령도 군 관사 아파트에서 민정이 누나랑 지내다가 저를 임신하고 고생을 좀 하셨던거 같아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도, 태어난 후에도. 그래서 엄마에게는 늘 미안해요. 내가 조금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백령도 라는 섬이 좀 낯설고 힘들기는 하더라구요. 감기도 자주 걸리고 뭐 그러다가 뇌수막염과 급성폐렴이 걸려서 제때 육지로 못나가고 그러다가 뭐 제 건강상태가 안좋아졌지만.
민정이 누나는 그때는 아주 작았고 장애가 있어서 어려움이 있고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동생이라고 나를 엄청 챙겨주고 밥도 먹여주고 우유도 먹여주고 입도 닦아주고 놀아주기도 하고 참 너무 사랑스러운 우리 민정이 누나였어요. 지금도 너무 사랑스럽구요. 동생이 이런 말 하니까 좀 그렇기는 하네요.
1993년 9월 21일 그날 제가 태어났고, 아들이라고 엄청 좋아했던 아빠 그리고 엄마. 너무 사랑합니다.
너무 감사하고 너무 보고싶어요.
이제부터 시간 날 때마다 한번씩 편지를 보낼께요. 누구에게 먼저 편지를 하게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순서는 중요하지 않아서 자기한테 먼저 편지 안썼다고 싸우지는 마세요.
사실은 엄마에게 가장 먼저 쓰고 싶기는 한데, 엄마에게는 너무 편지가 길어질거 같아서 조금 나중에 쓸께요.
아빠도 그렇고, 누나나 동생들 중에서 누구에게 먼저 편지를 쓸지는 생각해볼께요.
사랑하는 우리 독수리오형제 가족 그리고 강아지 베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이렇게 처음 편지를 쓸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고맙고, 내가 없는 자리를 늘 생각하고 곁에 두고 마음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어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요.
이제부터는 제가 편지를 쓰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너무 감사할거 같아요.
엄마, 아빠, 민정이 누나, 민아야, 윤준아, 학준아 그리고 베어야.
모두 사랑해요.
또 편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