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켄드릭 vs 드레이크 디스전 후기

이 디스전은 켄드릭의 승리였지만, 내겐 드레이크의 시작이었다

by 김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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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드레이크를 싫어했다!


나는 원래 드레이크를 싫어했다.
음악을 듣기 전부터 이미지가 먼저 굳어 있었다.
너무 부자 같고, 너무 허세였고, 감정을 너무 크게 소비하는 사람.
랩을 한다기보다, 인생을 SNS처럼 사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켄드릭 라마는 완전히 달랐다.
예술, 메시지, 서사, 현실.
힙합의 영혼에 가장 가까운 사람.

그래서 2024년 힙합계를 뒤흔든 디스전이 터졌을 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켄드릭의 편이었다.
세상도 이미 그쪽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이 서로를 난도질하는 그 어수선한 전쟁 속에서
내 마음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그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드레이크를 처음으로 ‘사람’으로 들여다보게 된 순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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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크는 ‘자기 종목’에서 졌다


드레이크의 가장 큰 무기는 원래 대중성이었다.
10년 넘게 스트리밍과 밈을 독점했고,
차트는 늘 그를 향해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래도 대중성에서는 드레이크가 이길 거야.”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Push Ups’가 나왔을 때 대중은 그의 편에 서지 않았다.
반면 켄드릭은
대중성의 영역이 아니었던 사람인데도
전 세계를 통째로 가져갔다.

‘Euphoria’, ‘Meet the Grahams’,
그리고 결정타 ‘Not Like Us’.

세 곡은 단순히 디스곡이 아니라
드레이크의 본진을 무너뜨린 곡이었다.
스트리밍, 밈, 차트, SNS 모두가 켄드릭에 쏠렸다.

드레이크는 힙합 스킬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대중성—에서 패배한 것이다.

이건 단순한 진 게 아니다.
정체성의 균열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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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승자만 보았다


디스전이 완전히 켄드릭 쪽으로 기울자,
세상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켄드릭이 힙합을 구했다.”
“드레이크의 시대는 끝났다.”

모두가 승자의 얼굴만 들여다봤다.
아무도 패배자의 얼굴은 보려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드레이크의 음악을 다시 틀기 시작했다.
전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그제야 알았다.
드레이크는 이번 싸움에서
너무 많이 말렸고,
너무 방어적이었고,
너무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브랜드처럼 포장되어 있던 감정들이
이번엔 전부 생살로 드러나 있었다.

그의 허세, 그 큰 목소리, 그 과잉된 자신감은
사실 “여기서 무너지면 나는 끝이다”라는 공포에 가까웠다.

그때 처음으로
드레이크가 스타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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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확신은 사실 두려움의 역반사였다

드레이크의 히트곡은 늘
“나는 이미 성공했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기 확신의 서사였다.
그런데 이번 패배 이후 다시 들으면
그 확신이 오히려 애처로울 만큼 흔들린 기둥처럼 들린다.

그는 늘 “난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그 말의 뒷면엔 거대한 압박이 있었다.


2) 시스템이 보호하던 스타 → 처음으로 속살이 드러난 순간

드레이크는 누구보다 시스템의 보호를 받던 래퍼였다.
차트, 플레이리스트, 대중의 관심.

그런데 이번엔
언론, SNS, 대중이 동시에 등을 돌렸다.
그는 그런 상황을 처음 겪었다.

그래서 그의 디스는
강함이 아니라 패닉에 가까운 톤이었다.


3) 그의 허세는 허세가 아니라 자기 방어였다

그가 반복해 온 자신감의 문장들—
“나는 정상이고, 흔들리지 않는다”—
이건 더 이상 허세로 들리지 않는다.

그건 자기 효능감이 무너질까 봐
스스로에게 걸던 주문에 더 가깝다.


4) 그의 공격성은 강함이 아니라 초조함에서 나왔다

드레이크의 디스곡은 파괴력이 아니라
반응 속도에서 문제였다.
서둘렀고, 조급했고, 흔들렸다.

그 온도는 냉철한 ‘디스’가 아니라
붕괴 직전의 ‘반응’이었다.


5) 과잉된 자신감은 그가 붙들고 있던 마지막 기둥이었다

그가 늘 강조하던 “나는 정점이다”라는 서사는
이제 완전히 다른 결로 들린다.

그건 “내가 정점이 아니게 되면, 나는 무엇이 되지?”라는
공포에 더 가깝다.

그래서 디스전 이후 드레이크의 음악은
완벽한 사람의 사운드가 아니라
버티는 인간의 만트라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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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디스전은 켄드릭의 승리였지만, 내겐 드레이크의 시작이었다


켄드릭은 힙합의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가져갔다.
드레이크는 대중성의 심판대에서 조롱을 받았다.
그건 명백한 승부였다.

하지만 나에겐 달랐다.

켄드릭은 정의를 보여줬지만
드레이크는 취약함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승자를 사랑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패배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보였다.

흔들리고, 버티고, 말리고, 방어하는 그 순간들.
그제야 그의 음악이 처음으로
한 인간의 체온처럼 느껴졌다.

완벽한 캐릭터가 아니라
부서지는 얼굴.
그 작은 흔들림에서
나는 처음으로 드레이크를 좋아하게 됐다.


“세상은 켄드릭의 승리를 떠들었지만,
나는 드레이크의 패배에서 인간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그때부터 그의 음악이 진짜로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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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드레이크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 Passionfruit

https://youtu.be/COz9lDCFHjw?si=gzHf2O6yLrB95j3T
— 드레이크를 싫어하던 사람도 손쉽게 빠져드는 온도.
부드럽고, 따뜻하고, 솔직하다.


� Hold On, We’re Going Home

https://youtu.be/sbLqX7cUKoM?si=vuHtflg-P35MKh3M
— 드레이크의 가장 ‘착한 얼굴’.
이미지의 오해를 걷어내는 곡.


� Hotline Bling

https://youtu.be/uxpDa-c-4Mc?si=XgJVuihernZtMn7c

— 밝은 얼굴 뒤의 외로움.
밈으로만 소비하면 절대로 모르는 정서.


� One Dance

https://youtu.be/Qul5dw3Vyio?si=ox1ri7pZopLjZ-F-
— 접근성의 정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곡.


� Find Your Love

https://youtu.be/Xyv4Bjja8yc?si=s8OYsK-K-A1qDObX
— 허세가 덜 붙어 있던 시절의 드레이크.
처음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멍해진다.


� Doing It Wrong

https://youtu.be/GmZsYYI1Vnc?si=VdTaXMBLDcEDXTf6
— 그의 가장 사적인 고백.


� Furthest Thing

https://youtu.be/Yo4HvPEklSQ?si=DSi25kzIWoxAr3C8
— 몽환적 빌드업과 전환이 살아 있는 명곡.


� From Time (ft. Jhene Aiko)

https://youtu.be/bHRv-EIuKJ8?si=lm_pGCGq7Y9h7kg9
— 조용하고 따뜻한 정직함.
드레이크가 처음으로 인간처럼 들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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