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여기에 담긴 사진은 고비사막의 유목민과 함께 2박 3일을 보낸 게르의 일상 모습
유목민의 이동수단이 이제 말도 낙타도 아닌 자동차라는 사실은 게르에 주차된 여러개의 차들이 말해준다
어느 나라던지 적어도 숙소에서는 와이파이가 되니까 보통 여행을 가더라도 데이터 신청 안하고 출발하는 편인데 몽골 여행은 왠지 불안해서 전화로 데이타 신청을 미리 해 두었다. 덕분에 수시로 모바일 진동으로 문자와 메일이 실시간 전송되니 이건 몽골 여행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거처럼 여겨질 정도다.
수신되는 메시지를 확인할 때마다 여전히 긴장은 풀어지지 않으니 여행이 주는 여유가 전혀 안 느껴진다라고나 할까? 핸폰으로 문자를 보며 일부 남은 업무를 하다가 고개들어 창너머를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해준다. 바깥 풍경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몇시간 내내 넓고 이끼처럼 붙은 초원을 보여주며 사막이라는 뜨거운 황량함을 색깔로 보여주며 고비사막이 뭔지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가끔 시그널이 중간중간 끊기면 내가 한국에 없는게 맞구나 생각을 하지만 사실 고비사막 정도면 신호가 전혀 안잡히는게 맞는거 같은데 살짝 실망(?)은 하면서도 한편으로 안심도 한다. 사실 말은 사막이라고 하는데 도로를 달리는 내내 생각보다 시그널이 잘 잡혀서 살짝 놀라기도 했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마을들과 초원에 듬성듬성 보이는 게르 몇개로 정말 내가 고비사막을 종단하고 있구나 확인이 되었다. 여긴 아프리카도 인도도 아닌 몽골 사막이니까 낙타랑 염소랑 게르는 지겹게 본다
정오 12시.
달리는 도로를 기준으로 제접 큰 마을도 보이고, 주유소도 깔끔하게 차려져 있기도 하고 큰 버스들도 주차해 있는걸 보니 이정도면 고속도로 휴게소 폼이 난다. 얼마나 정차할까? 신식 화장실 가서 볼일보고 깨끗하게 손씻을 정도을 정도의 시간? 아님 기지개라도 켜며 사막을 향해 야호할 여유까지 부릴수 있으려나 생각하며 시계를 보는데 벌써 12시. 그렇다면 시간상 딱 점심시간인데 점심 먹을 시간은 주나?
나의 모든 생각을 정리라도 해주듯 30분 뒤에 출발한다는 가이드의 통역에 안심하고 제대로 된 몽골리아 현지식을 먹어보자는 각오로 어느건물이 식당인지 확인하고 그 건물을 향해 도로를 가로질렀다. 한국에서 삼겹살은 세끼 못먹지만 몽골에서는 세끼 모두 양고기만 먹을 각오로 여행을 온지라 나의 양고기 먹방힐링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일단 밖이 덥기도 했지만 식사시간을 벌기위해 뜨거운 태양속에서 식당으로 뛰었다.
문을 열고 직진으로 향해 가니 카운터 언니 옆에 김을 모락모락 내며 삶은 고기 접시들이 여러개 보인다.
나의 먹방힐링은 그렇게 어제 잡았다는 신선한(?) 염소한마리의 뜨거운 살코기를 뜯으며 시작되었다. 솔직히 냄새가 나는건 맞는데 이미 양고기의 식감을 아는 사람이라 족발 먹듯이 뼈채 들고 신나게 아니 게걸스럽게 먹었다. 가이드가 정말 이렇게 먹는데 가만히 냅둬도 되는가 걱정이 되는지 are you okay? 라며 연신 묻는다.
- 제가 전생에 몽골사람 이었나봐요 이렇게 양고기가 맛있고 좋을수가 없네요
이미 요리되어 접시에 담긴 양고기를 주문한 나와 달리 메뉴판에서 골라 주문한 가이드의 선택은 소고기. 뭐라고? 아니 몽골사람이 왜 소고기를 시켜먹어요? 나랑 같이 양고기 시켜먹어야 하는거 아닌가? 난 다르게 요리된 양고기도 먹고 싶어서 뭐 시키나 묻지도 않고 그냥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하네.
결국 우리는 3인분 같은 고기 2인분을 쌀밥 3공기와 함께 먹었다. 그러나 몽골에서 고기를 이렇게 많이 주는지를 몰라서 절반 이상 남기고 느끼한거 같아서 중간에 맵게 먹고 싶다고 말했더니 놀랍게도 매운 현지소스가 아니라 빨간 배추김치를 줘서 더욱 놀랬다 (몽골여행 중에 받은 충격 2탄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한국 상표와 식당에 내놓는 김치들이다). 그러나 깜놀한 김치맛도 좋았지만 배가 부르니 거의 남기고 그나마 찐빵같은 건 테이크아웃 부탁하고 남은 고기는 버스이동 하면서 상할까봐 모두 남기고 나왔다.
고비사막의 반복되는 풍경속에서도 지역에 따라 염소무리의 규모는 조금씩 다르다
오후 15시.
계속되는 같은 풍경이다. 높이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지평선에 이끼처럼 깔린 초원지대 그리고 염소 무리와 낙타들의 한가로운 모습. 같은 모습이 반복되서 그런지 졸기 시작했고 결국 잠도 들었다. 잠속에 깜빡깜빡 하면서 고비사막이 보여주는 풍경을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고 중간중간 카메라 셔트도 누르고 휴대폰 촬영도 하면서 혼자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 캐런, 지금 내려야 해
- 뭐? 여기 도로가에 그냥 내리라고?
고비사막의 도로에 무작정 내린 몽골 유목여행의 새로운 시작
are you sure? 라는 짧은 영어를 반복적으로 내뱉으며 확인을 했지만 정말 믿을수 없는 위치에서 우리는 버스에서 덩그러니 둘만 내렸다. 아니 고비사막을 몇시간 씽씽 달리다가 이렇게 아무 도로에 무작정 내리면 어쩌라고? 이게 진짜 몽골리아 유목여행의 시작인가?
고비사막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건 자동차 뿐. 가끔 사람은 내려서 볼일을 볼 뿐이다.
몽골지도를 펼치고 남쪽방향으로 한줄 쭉 그으면 그것이 내가 달린 고비사막의 도로이다. 그럼 오늘의 목적지인 숙소는 어디에 있을까? 내린 도로가에는 돌멩이 몇개가 쌓여 있어서 어떤 이정표가 되는거 같기는 한데 7월의 몽골리아 여름은 거의 체감온도 40도 이상인데 이렇게 도로에 서 있으면 무슨 마을이 보이나? 갑자기 나는 더위 먹은 사람처럼 깔깔 웃었다.
하차한 시간은 오후 3시 10분경. 그래 3시와 4시 사이에 내린다고 했으니 시간상으로는 맞게 도착한거 같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곳이 오아시스 마을인지 사막의 중심인지 어떤 표시조차 없는데 도대체 이건 뭐지? 정말 이런 사막의 도로에 무작정 내려서 오늘 묵을 숙소를 어떻게 찾아갈까? 가이드일 처음 시작한다는 그 친구가 왠지 불쌍하기까지 하다. 혼자 허탈하게 웃으며 사방을 아무리 돌아봐도 지평선처럼 펼쳐진 풍경 뿐인데 도대체 무슨생각으로 이런 사막 중간지점에서 내린걸까?
고비사막에서 보이는 풍경은 두가지. 하늘에는 구름 & 땅에는 지평선
도로에는 지나가는 차도 없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적막함마저 감돈다. 그렇게 멍하니 말도 못하고 고비사막을 바라보고 있는데 도로 저 멀리서 빵빵하고 찌그러진 봉고차가 달려온다. 운전 아저씨는 손까지 흔들고 있다.
우리를 데리러 오는건가? 우리가 여기에 내린걸 어떻게 알고 달려온거지? 우린 전화도 안했고 전보도 안쳤고 그냥 버스에서 무작정 조금전에 내렸을 뿐인데? 우리를 어떻게 발견한거지? 하늘에 드론이라도 띄우고 지켜보고 있었던건가?
저 멀리 보이는 게르에 살고 있는 유목민 아저씨의 차에 실려 숙소로 가는 중
- 헬로
- 우와~ 가이드 말대로 진짜 우리 픽업하러 오신거에요?
평평한 고비사막의 도로는 거의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데 하늘아래 그 도로에서 움직이는 거라곤 사람이 아닌 자동차가 대부분인데 큰 버스 한대가 잠시 멈추었고 거기 내린 사람이 움직이고 있으니 우리 마을 찾아온 손님인거 알고 바로 시동켜고 달려온거란다 (참고로 몽골의 유목민들은 대평원에서 먹이가 있는 초원을 찾아다니는 움직이는 동물을 귀가시키거나 물을 줘야 하기 때문에 무척 시력이 좋다고 한다). 헐~ 레알 유목민의 황당한 픽업 순간. 그렇게 황량하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고비사막의 도로에서 픽업당한(?) 나는 의심반 재미반 웃으며 중고차에 실려 유목민의 숙소로 실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