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엄마직에 종사합니다.
산다고 하기엔 짧고 여행이라기엔 길었던 캐나다 살이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비규환일 것만 같았던 아이들과의 하루에도 이제는 질서가 생겨서 우리는 제법 시간표 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육아의 질이 나아지진 않았고, 그저 아이들도 나도 결코 이상적이지 않은 이 씁쓸한 현실에 그대로 적응한 것 같다. 엄마의 인격은 하루아침에 훌륭해지지 않았으며, 아이들의 태도도 하루아침에 의젓해질 리가 없었으므로.
그래도 캐나다에 와서 예기치 못하게 건진 것들이 몇 개 있다. 일단 체력을 건졌다. 고된 육아에 몸이 쇠약해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지난 세 달 동안 트레드밀 위에서 약 404km를 뛰며 나는 초등학생 이후로 가장 팔팔한 몸을 갖게 되었다. 숨이 안 찬다 숨이. 스트레스 풀 곳이 헬스장밖에 없는 삶은 어찌나 경이로운가. 그런데 더 경이로운 건 서양식의 위대함이다. 저렇게 뛰었는데도 살이 붙는다.
지난 글에서도 썼듯이 냄비밥의 달인이 된 것도 이득이다. 이제 언제 어디서든 밥이라면 자신 있다. 어린이집도 친정도 없이 뭐라도 해서 애들을 먹이다 보니 손도 좀 빨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마음먹고 했던 일들이 이제는 '뭐 이까짓 거' 하면서 그냥 쓱해버린다.
한 번쯤 익숙했던 맥락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속해본 것도 의미 있었다. 실제로 살아보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문화와 사람살이를 짧게나마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이 작은 변화가 나와 가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잠시 이국 땅에 머무는 동안 나는 애써 회피해 오던 모든 것들을 직면하게 되었다. 겁이 나서 한 눈 지그시 감고 모른 척했던 것들, 행복하지 않은데도 행복하다 믿었던 것들, 용기가 없어서 미뤄왔던 것들에 좀 더 마주하게 되었다. 피할 곳 없는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직면뿐이었다.
직면은 고통을 수반한다. 기분이 좋기만 한 직면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고통은 진솔하다. 진짜 마음과 마주할 때 인생도 진짜 해답을 향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시궁창을 가리려고 살포시 덮어 놓았던 싸구려 포장지를 거두어낸 지금, 인상은 찌푸려지지만 한편으론 홀가분하다. 더 이상 아닌 척하는 데에 세월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이젠 오물을 치우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
다음 주부터 얼마 간은 남편의 일정으로 인해 미뤘던 늦은 여름휴가를 보낼 예정이다. 명색이 여름휴가니까 더운 나라 멕시코에 가기로 했다. 비록 구혼이 된 지 오래지만 요즘 신혼 여행지로 핫하다는 칸쿤으로 떠난다. 풋풋한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구수한 구혼의 기운을 널리 널리 퍼뜨리고 와야... 여러분은 아직 결혼을 몰라요 진짜 부부가 뭔지 내가 보여줄게:>
어쨌거나 푸른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며 하루 종일 빈둥댈 생각을 하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실실 웃음이 나온다.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처럼 늘어지게 자고 늘어지게 놀다 올 거다. 노트북도 두고 가서 글 한 자도 쓰지 않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무위도식을 누렸던 게 십 년도 족히 더 된 것 같다. 물론 같이 사는 아침형 작은 인간들이 게으름 부리는 어미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만, 마음이라도 멕시코의 느긋한 바다를 흉내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