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책방 끝
릭 워렌과 만났던 지난 몇달간을 이젠 정리해야 한다.
여행을 시작하면, 끝이 있는 것처럼 릭과의 만남도 마음에 방점을 찍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끝"은 언제나 "다른 시작"을 의미하기에, 매듭이라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매듭을 탄탄히 지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지, 쉽지 않다.
40여일간 브런치에 책방에서 나눴던 이야길 다시 정리하는 것은 쉬운듯 쉽지않았다. 오탈자 잡는 정도로 쉽게 생각했는데, 그걸 마치고 나면,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그 한 문장을 찾기 위해 일단은 내가 읽으면서 적은 노트를 한번 훑고, 대화나눴던 것을 다시 한번 체크하고 그 다음에도 적당한 문장을 만나지 못하면 거의 한 챕터를 다시 읽기도 했다. 그렇게 뽑아진 글에 해석을 붙인다. 한글판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어떻땐 원문과 의미가 조금 달라보이거나 하면, 나의 해석을 가미했다.
그렇게 주제 문장이 뽑아지면 제목을 생각해내어야 했다. 나를 붙잡았던 구절에서 제목을 찾아냈다. 제대로 제목이 찾아지지 않으면,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머리카락을 훑어낸다. 마침내 제대로 된 제목에 이르면, 다시 한가지가 남는다.
표지 사진을 골라야했다. 초기에는 사진 무료 사이트인 pixabay에 신세를 졌다. 그 작업도 수월치는 않았다. 나중에는 그간 내가 찍은 사진중에서 주로 골랐는데, 주제와 동떨어질 때도 있었으나, 잠겨있던 사진 몇개를 수면위로 올려 햇빛을 쬐여주었다는 데서 보람을 찾는다.
40일간 거의 같은 시간에 글을 올렸다. 그 시간에 글을 올릴 형편이 안되면, 전날 대충의 작업을 해놓고 그 다음날 업로드만 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내 기억으로는 단하루 엄마가 우리집에 오셨다가 다시 요양원으로 들어가시는 날,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시간 차이를 두고 두편을 한날에 올렸었다.
처음 본격 기독교 서적인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한 글을 올리기로 했을때, 독자들 생각을 했었다. 여러 성향의 구독자들이 있을 것이고, 이 글들이 어떤 영향을 줄지, 혹시나 구독자가 몇명 남지않고 다 없어지지 않을 지 염려했다.
책방에서 활발한 토론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으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램을 가져보기도 했다.
이 두가지 모두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독자들은 많이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몇분이 늘었다. 떠난 분들은 말이 없으니, 떠난 분들의 숫자가 몇명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글을 올릴 때 99명이었는데, 현재 구독자분이 106명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도 언제나 구독자수와 그날 브런치를 방문한 방문자수를 체크한다.
40여일을 지나는 동안 글을 잘 읽노라고 표현해주신 분은 딱 한분이었다. 그분의 말씀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표현해 주지 않았지만 "좋아요"를 눌러주신 분들도 있었다. 그분들의 말없는 응원에 감사함을 보낸다. 이방이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한갓 꿈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토론의 장이 된대도 어쩌면 나는 감당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런면에서 이 작업을 시작할때 한껏 부풀었던 마음이 많이 가라앉게 되었다. "단 한명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눈에 띈다면",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그나마 실망을 감출 수 있다.
릭 워렌 목사의 설교는 요즘은 많이 듣지 않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켜놓고 자기도 했는데, 이제는 다른 기독교 프로그램을 듣는다. 그중에서 "새롭게 하소서"가 즐겨듣는 방송이다. 하나님안에서 인생이 바뀐 사람들 이야기여서 언제나 흥미롭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그곳엔 있다. 그들이 겪었던 일을 통해, 이 세상이 만만치않은 곳임을 매번 느끼곤 한다.
인간관계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는 그 어려움이 낭비되지 않고, 새로운 관계로 자라나길 간절히 원하게 됐다. 거의 뿌리채 뽑힐뻔 했으나, 흙과 거름을 더주어서 튼튼히 뿌리를 내리게 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생겼다. 그 나무를 잘 키우라고 릭 목사도 내게 왔고, 믿음의 동료들도, 그리고 좋은 글들도 내게 온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배움을 미루지 않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책을 읽기전에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문장을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고, 다른 시도를 해보지 않는다면 그것이 갖다줄 것이 무언줄 모른다. 그러므로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볼수 있다.
나의 신앙의 여정에 릭 워렌을 만난 일은 큰 이정표가 된 것 같다. 아름답고 좋으신 하나님께서 손수 빗으신 내 모습이니, 나를 사랑하고 다른 주님의 작품들과 인격대 인격의 만남들을 맺어나가길 마음속 깊이 바래본다. 릭 워렌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되도록 해줬다는 점이다. 그는 더이상 저멀리 하늘의 보좌에 앉아서 세상을 굽어보시는 분이 아니라, 내안에 계셔서 나와 함께 생활하시며, 나의 아픔에 마음아파하시고, 나의 기쁨에 동참하시는 그런 분이신 것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믿음이 희미해질 때 이 책방을 다시 열어보며, 가슴이 무언가로 꽉 채워진 그 충만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길 바래본다. 그러고보니,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책방이 존재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