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 나를 소모시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보통
“잘 버티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그만두지 않고,
쉽게 화내지 않고,
쉽게 돌아서지 않는 사람.
하지만 중년이 되면
다른 능력이 필요해집니다.
잘 끊어내는 능력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부탁이었습니다.
“이번만 도와줘.”
“이 정도는 네가 하는 게 맞지.”
그 말이 반복되면
부탁은 역할이 됩니다.
역할이 굳어지면
사람은 거기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집니다.
문제는 일이 아닙니다.
끊지 못하는 습관입니다.
세네카는 말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오래 붙잡고 있는 마음이다.”
우리는 종종
이미 끝났어야 할 관계를 붙잡고,
이미 정리했어야 할 역할을 유지하고,
이미 충분히 했던 설명을 계속 이어갑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혹시나 미움받을까 봐.
혹시나 기회를 잃을까 봐.
혹시나 내가 나쁜 사람이 될까 봐.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끝내지 못하는 습관이
당신의 시간을 조금씩 빼앗고 있다면,
그건 성실함이 아니라
지연입니다.
끊지 못하는 관계는
언젠가 스스로를 소모시킵니다.
중년의 피로는
새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끝내지 못한 것들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잘 끊는 사람은
차갑지 않습니다.
대신
명확합니다.
그라시안은 말했습니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다.”
시작할 때가 있듯
끝낼 때도 있습니다.
끝내야 할 것을 붙잡고 있으면
새로운 것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끊는다는 것은
사람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시간을 되찾는 것입니다.
내 에너지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내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오늘 한 번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아직 붙잡고 있는 것 중
이미 끝났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관계일 수도 있고,
역할일 수도 있고,
오래된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잘 시작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잘 버티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잘 끝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기준을 되찾는 사람은
대개 잘 끊어낸 사람입니다.
세네카 Seneca
“삶을 낭비하는 것은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끝내지 못한 것들을 계속 붙잡기 때문이다.”
끊어야 할 것을 끊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리듬이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