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인간의 원초적인 능력 ‘공감’
클램 프로젝트(Klem Project)를 시작한 지 아홉 해가 지나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째 아이가 2살 때 아프리카에 두 차례나 갔다 오겠다는 철없는 남편을 쿨하게 보내주고 이해해 준 와이프가 참 대단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 황열병 주사를 맞고 며칠간 두통과 몸살로 앓아눕던 기억과 경비행기로 경유해 가면서 힘들게 도착했던 말라위 차세타 마을의 열악한 상황에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간의 고생은 일도 아니었다고 느낄 세도 없이 매 순간 수십대의 강펀치를 맞은 것 같았던 정신적 충격은 지금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내 자식과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가축 오물 근처의 구정물을 먹고 배고픔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나처럼 인간으로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방송은 각본이 있을 거라는 나의 편협한 생각을 한순간에 뒤바꾼 것은 SBS 백시원 피디의 날것 그대로의 현장 중심 촬영 접근법이었다. 피디 입봉작으로 선택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그녀가 '디자인 싱킹’의 근본적인 원리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기획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 발의 상처에 대한 관찰과 이해과정을 통해 신발 만들기라는 기획이 도출된 것은 현장에서의 여러 사람들의 공감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디자인싱킹은 내게 디자이너가 늘 해오던 디자인 작업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때는 사람과 상황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감각적인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다.
스탠퍼드 디 스쿨에서 제안하는 디자인싱킹 과정의 첫 단계인 ‘공감하기(Empathize)’는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 함께 동화되어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평소 문제라고 생각 못했던 요소를 찾는 행위를 말한다. 사실 공감은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인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이 있기 전에는 나도 공감의 뜻을 사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통해 '공감'의 정의를 조심스레 내려 보면 공감은 원초적인 상황에서 '나'와 타인을 동일시하는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감은 원초적인 상황에서 '나'와 타인을 동일시하는 감정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뇌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다. 신경학자이자 의사인 맥린(Paul MacLean 1913-2007)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동물적 감각에 의해 직관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Reptile Brain)와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인 변연계(limbic system)의 협력으로 작동한다. 바로 이것이 디자인 싱킹에서 제시하는 인간 뇌의 영역별 구분을 통한 '공감'의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
즉. 인간은 매우 논리적인 동물 같지만 실재 결정에 있어서는 원천적인 감각과 감성에 의한 행동을 하는 공감 영역이 발달해 있다. 이것이 바로 기계와 인간의 다른 점 중에 하나다. 쉬운 예로 디자인싱킹 전문가 홍익대학교, 나건 교수가 언급했듯이 부모가 자식의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자신과 동일하게 느끼고 격심한 아픔을 느끼는 것이 '공감'의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무보수로 아홉 해 동안 틈틈이 국내외에서 보내오는 프로젝트에 대한 문의를 받고 해결 방법과 생각을 나누는데 나의 시간을 기꺼이 나눌 수 있었던 것 또한 아프리카에서 겪었던 공감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같다. 클램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겸허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일깨울 수 있었다.
또한 어떠한 이익도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공감해 준 드러나지 않은 많은 분들이 존재한 것에 정말 놀랐고 고마웠다. 이제 클램은 내 손을 떠나 스스로 성장해 가는 생명체 같은 느낌이 든다.
클램 프로젝트는 신발이라는 제품을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처음부터 누구의 것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공감을 기반으로 교육과 서비스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자신이 배양하는 생물학적 소재를 클램 프로젝트에 적용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기도 하고 미국의 한 지역 방송국에서는 생방송으로 프로젝트를 소개하기도 하는 등 정말 다양하고 훌륭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클램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클램 프로젝트(Klem Project)라는 상징을 바탕으로 공감과 배려라는 마음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한한 삶을 살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감각인 '공감’을 가리고 사는 것과 같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나 공연, 음악과 같은 문화 산업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공감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한 본능적인 현상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클램 프로젝트의 근본 적인 정신은 공감과 배려를 통해 생각을 함께 나누고 발전시키는 자발적인 인간의 행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Klem Spirit
클램 프로젝트의 근본정신은 공감과 배려를 통해 생각을 나누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공감을 전달하는 클램 프로젝트의 정신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또 다른 의미 있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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