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감사장

제주 배움의 길로 들어서다

by 반점

오늘부터 제주장마 1일, 장마가 시작되었다. 푸른기 없는 하늘에 아래로 내려앉은 공기, 전혀 반갑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나. 아직은 내쉰 숨이 몸에 달라붙지는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다. ‘책이 되는 글쓰기 수업’에 다녀왔다.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준 그 이야기를 해야겠다.


제주도 입도 후 장롱 깊숙이 묵혀두었던 운전면허증을 꺼냈다. 그날은 동승자 없이 혼자 운전을 한 첫날이다. 목적지는 집에서 5.5km,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의 애월읍 수산리. 출발하기 전 내비게이션을 몇 번 확인하고 물을 두어 번 들이키고 아마 심호흡도 후후 거푸 했을 것이다. 의자를 바짝 당겨 앉고 이마가 거의 앞 유리에 닿을 듯 어찌어찌 차로 엉금엉금 목적지에 도착했다. 갱년기 홍조에 긴장 홍조까지 더해 아주 따끈해진 얼굴로 도착한 그 동네는 정말 조용했다. 파란 지붕의 창고형 건물에 유리문, 아 문이 닫혀있다. 폐업? 휴업? 생각해 보니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집에서 가까운 작은 책방으로 무작정 찾아간 것이다.


유리문에 ‘책’이라고 프린트된 걸 보니 제대로 찾아오긴 했다. 손을 이마 위에 둥글게 모으고 유리문 안을 들여다봤다. ‘그냥 돌아가야 하나?’ 하는 순간, 문이 스르르 열렸다. 넉넉한 풍채에 둥근 얼굴, 동그란 안경을 쓴 남자가 나온다.


“아 죄송합니다. 아무도 안 계신 줄 알았어요”

“괜찮습니다. 들어오세요”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내부 광경은 선뜻 들어서기 망설여지는 모습이다.


“많이 어수선하죠? 도서관에 책 납품 작업 중이라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럼 다른 날 방문하겠다 했으나 웃는 얼굴형 사장님은 들어오라며 한쪽으로 비켜선다. 책더미가 이쪽저쪽 사방으로 쌓여있어 불편해 보이긴 했으나 일단 들어섰다. 머뭇거리며 책방을 둘러보는데 사장님이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주며 편히 둘러보라 한다. 자신도 이참에 커피 마시고 잠시 쉴 수 있어 좋다며, 책방과 본인의 히스토리를 풀어놓는 사장님.


회사 생활에 지쳤을 때 제주에 와서 위로받았고 고민하다 아예 퇴직하고 내려오게 되었다고, 자신은 너무 좋다고. 가족한테 고맙다며 허허 웃는 책방 사장님. 여행 중이냐는 물음에 제주 입도 두 달째라 하니 제주살이 정보를 망설임 없이 들려준다. 성 이시돌 목장의 호숫가는 산책하며 책 읽기 좋은 곳, 배울 거리가 많은 제주도민대학, 작은 도서관의 독서 모임과 공연 정보 사이트 등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몹쓸 기억력 같으니, 기억이 다 나지 않는다. 역시 메모가 필요하다.


그리고서점 사장님, 그날 감사했습니다.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안온의 『일인칭 가난』과 같이 데려온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대출한 돈을 미리 갚아야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처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기한 맞춰 읽고 반납해야 하기에 그리되었습니다. 빌려온 책에 밀려 산 책은 집 책꽂이에 가로 놓여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밀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좀 더 분발하겠습니다.


사장님 덕분에 좋은 수업 찾아 잘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멋대로, 뜬금없이 사장님께 감사장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차피 사장님은 모르실 테니 제 맘대로 드리겠습니다, 감사장을.


‘그리고서점 사장님, 당신은 어릴 적 꿈을 찾아 작은 책방을 잘 운영하고 있으며, 책방을 방문한 손님에게 매우 적절한 정보와 더할 수 없는 친절로 손님을 감동하게 하고 또한, 제주 배움의 길로 이끌어 반백 살에도 성장할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감사장을 드립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