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성각막상피미란과 함께 살아가는 기록
2장. 이름도 생소한 병
심하면 실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근무 중에 찾아왔다. 퇴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오른쪽 눈에 날카로운 통증과 이물감이 갑자기 몰려왔다. 그 통증은 평소에 경험하던 피곤함이나 건조함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누군가 송곳으로 눈을 찌르며 비트는 듯했다.
나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흐르는 물에 눈을 대고 한참을 씻어냈다. 인공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며 ‘이 정도면 괜찮아지겠지’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눈은 여전히 뜨겁고 시렸다. 조금이라도 뜨려고 하면, 이물감과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와 고개를 떨궈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말 그대로 지옥 같았다. 수 시간 동안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는데, 눈이 제대로 뜨이지 않으니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두 눈으로 보던 익숙한 길이, 한쪽 눈에만 의존하는 순간 낯설고 위험하게 다가왔다. 평소 같으면 두세 시간이면 닿을 거리였지만, 그날은 몇 곱절은 더 멀고 험난하게 느껴졌다. 매 순간 ‘이러다 사고라도 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핸들을 잠시 멈췄다.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을 가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조대원은 가까운 응급실을 안내해주었고, 나는 한쪽 눈으로 겨우 앞을 살피며 안내받은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의사는 내 눈을 확인하고 보호렌즈를 끼워주며 짧지만 강렬한 한마디를 던졌다.
“이런 상태로 계속 지내시면, 심하면 실명까지 올 수 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실명’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지금 당장 눈앞의 세상뿐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삶 전체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픔보다 더 무서운 건,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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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끝나지 않는 공포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마음은 전혀 편안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통증이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 때문에 온몸이 경직됐다. 시계를 보면 시간이 멈춘 듯 흘러가지 않았고, 머리맡 불빛은 유난히도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결국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였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또다시 통증이 시작됐다. 눈을 뜨는 순간 날카로운 고통이 파고들었고,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이 고통이 정말 매일 반복되는 걸까? 내가 앞으로 어떻게 버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상근무로 인하여 더더욱 출근은 피할 수 없었다. 진통제를 삼키고, 충혈된 눈을 겨우 감싸 쥔 채 차에 올랐다. 그날의 장거리 운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한쪽 눈만으로 도로 위를 달린다는 건 무모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선택지가 없었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불안했지만, 누군가는 출근을 해야 했고, 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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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과 더 낯선 현실
비상근무가 끝나고 곧바로 찾은 안과에서 의사는 내 병명을 설명해주었다. “재발성각막상피미란”이라는 긴 이름. 의사에 따르면 각막 상피가 제대로 붙지 않아, 작은 자극에도 쉽게 떨어지고 상처가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반복적으로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며, 심하면 각막염이나 각막궤양으로 이어져 시력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병명은 너무 생소했고, 내용은 너무 무서웠다. ‘재발성’이라는 단어는 특히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 병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앞으로 계속 찾아올 수 있다는 현실은 견디기 힘든 선고처럼 들렸다.
그때부터 나는 알았다. 이건 단순한 피로나 일시적인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만한 진짜 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