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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Oct 14. 2020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중에서 

<굿 윌 헌팅>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어린 시절 겪은 가정 폭력으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윌’이 심리학 교수 ‘숀’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명석한 두뇌로 상담 이론과 순서까지 다 꿰차 웬만한 상담 전문가는 다 우습게보던 윌은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 봐.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아요.”

“네 잘못이 아니야.”

“안다고요.”

“아니, 몰라.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아요.”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았어요.”

(...)


윌은 꽤 여러 번 자기 잘못이 아님을 확인받은 다음에야 숀에게 푹 안겨서 운다. 아주 펑펑 울어버린다. 이 장면을 보며 울컥한다면 우리도 숀 같은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 친구가 해결되지 않는 상처를 꺼내 놓았다. 자신은 가족에게 많은 것을 해주는데(내가 봐도 과할 정도였다), 가족들은 조금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이 힘들 때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는다고 했다. 

10년 넘게 알던 친구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는 바람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겨우 냅킨만 건넬 뿐 숀처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안아주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너는 이렇게 들어주잖아. 친한 친구는 이런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성향이고,  한 친구는 애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들어 줄 겨를이 없어.”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라도 네 말을 알아들었다니 다행이다.’

<굿 윌 헌팅>에서 가장 안심이 되는 대사가 있다. 


“아니, 몰라. 네 잘못이 아니야.”


과거의 상처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윌에게 숀은 단호하게 ‘아직 넌 모른다.’고 말한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 누군가 더 확실하게 말해주었으면 하는 말, 안다고 했지만 실은 잘 모르는 말을 숀이 해준 것이다. 


우리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 애인, 부모, 동료들에게 말을 한다. SNS에도 올린다. 하다못해 카톡 프로필의 사진이라도 바꾼다. ‘내 마음 좀 알아 달라고.’ 어디에 있고 무엇을 먹었는가 하는 보통의 일상까지 실시간으로 알린다. ‘보통의 일상 속으로 숨은 내 감정을 읽어 달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데도 허기가 지고 뭔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도 당신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대화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하면 말을 쏟아내기에만 바쁘다. 그러다 보면 진짜 내 마음은 저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나도 못 찾는 곳으로. 멀리.

어린 아이는 엄마에게 속마음을 들키는 게 쉽다. 엄마는 늘 아이를 관찰하고 있어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속마음과 다르게 말할 때 눈과 코와 입, 그리고 손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금세 알아챈다. 

어른이 되면 갑옷이 두꺼워지고 그 너머로 속마음을 잘 숨길 수 있다. 10대에서 20대, 또 30대로 갈수록 속마음을 감추는 기술만 는다. 그래야 연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부모에게 철든 자식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야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지 않고,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상사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버린다. 들키고 싶은 속마음은 영원히 발각되지 않는다. ‘숀’ 같은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윌은 숀에서 속마음을 완전히 들켰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위안 받았다. 우리에게도 숀 같은 좋은 청자가 필요하다. 나의 속마음을 들키고 싶은 사람. “잘했어. 윌 헌팅”이라고 말해주는 사람. 아무도 나의 본의를 헤아려 주지 않는다면 불행히도, 의미 없는 말 사냥만 계속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한 명의 숀은 있으니. 


_김유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피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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