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봄돌 Feb 03. 2020

손재주 없는 사람들

# 3 대팻날 갈기 / 10월 넷째 주 일요일


오늘은 4시간이 넘도록 대팻날만 갈았다. 수업이 끝난 뒤 손을 박박 씻고 수건으로 손을 닦았는데도, 손가락 끝과 손톱에 낀 쇳물 자국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 무감각해진 오른손 검지와 엄지를 비비면서 손재주란 뭘까, 생각했다.


어릴 때 친가 쪽 어른들은 내 손만 보면 붙잡고서 놀라듯, 놀리듯 한 마디씩 했다. 내용은 대체로 이랬다. ‘남자애 손이 왜 이렇게 생겼냐는 것’과 ‘게으른 손이라는 것’. 확실히 내 손의 모양새는 부계 혈통과는 거리가 있었다. 두껍고 뭉툭한 손가락을 가진 친가 쪽 사람들과 달리 내 것은 얇고 긴 편이었고 특히 손톱이 아주 길쭉했다. 엄마의 것보다도 길었다. 어릴 땐 어른들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좀 게을러도 아무튼 아빠 손을 안 닮아서 다행이야,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손재주에 관해서라면 사정이 조금 달랐다. 친가 쪽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다들 손재주가 뛰어난 편이었다. 뭔가를 고치거나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매를 걷고 나서면 뭐든 뚝딱 해결해냈다. 엄마 손을 닮은 내 동생의 손도 매우 기민하고 꼼꼼한 편이었다. 아무튼 동생은 뭐든 잘 찾고 잘 관리하는 얘였다. 물론 나도 내 수준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우리집에서 항상 덜렁거리는 애, 뭘 잘 떨어뜨리는 애, 손이 여물지 못한 애가 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뭔가를 만들거나 고치는 일에 배정받지도 않았다.


처음 목공예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아빠는 ‘진지하게’ 우려를 표했다. 그건 자식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도 내 손재주에 대한 우려에 가까웠다. 아빠는 내가 뭘 하든 마음대로 해봐 라는 식이지만 내 손재주에 관해서라면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정말 니가? 같은 말을 머뭇거리지도 않고 할 수 있는 정도였던 것이다. (내가 정확히 예상한 반응이기도 했다.) 나는 아빠의 반응에 또 모르죠 완전 잘 맞을지도,라고 대답했지만 물론 나 역시 내 손을 믿을 수 없었다. 내 손으로 눈앞의 결과물을 만드는데 성공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도 했다.


“차분한 성격이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오늘 수업에서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에 약간의 용기를 얻었다. 내 다양한 기질과 차분한 성격 사이의 공통점을 줄긋듯 연결해서 선생님의 말을 나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돌려두었다.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도 정신이 멀쩡한 걸 보면 꽤 차분한 인간일지도 몰라, 따위의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연필은 사서 바로 쓸 수 있지만 대패는 사용 전 대팻날을 갈아야 한다. 동양식 대패에는 어미날과 덧날, 이렇게 두 개의 날이 있다. 어미날은 나무의 결을 고르게 하는 역할을 하고 덧날은 어미날을 지탱해주는 동시에 얇게 대패질된 나무를 밖으로 빼내주는 기능을 한다. 작업자는 항상 두 개의 날을 정확하고 정교하게 갈아 둬야 한다.


대패를 만진 첫 시간에는 대팻집과 대팻날을 조립하는 법과 분리하는 법, 두 개의 대팻날을 숫돌로 가는 법을 배웠다. 조립과 분리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대팻집에 맞물려 들어가는 어미날과 덧날의 위치를 고정시키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됐다. (조립하고 분리하는 과정에서 두 날 끝이 부딪히면 대팻날이 상하게 되고 그럼 처음부터 다시 갈아야 한다) 나는 선생님이 보여주는 순서를 이미지 트레이닝한 다음, 실제로 해보고, 막히는 부분은 교정 받으면서 자세나 힘의 세기를 조절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대팻날 가는 것 자체가 좀 고됐다. 공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다이아몬드 숫돌’로 날을 세우고, 그다음에는 ‘물숫돌’을 사용해 날을 극단적으로 뾰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다이아몬드 숫돌부터 시작했다.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긴 직사각형 숫돌 위에 대팻날을 올려둔 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날의 양 끝을 누르고 왼손 검지와 중지로 날의 중앙을 누른다. 그리고 날 전체를 힘껏 누르며 위아래로 움직이면 된다. 어려운 건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힘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날의 한쪽 면만 갈리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 들면 손가락이 마비된다. 몇 번만 움직여도 손가락이 뒤로 꺾이는 기분마저 든다.


그렇게 2시간쯤 갈고 쉬었다가 이번엔 물숫돌에 날을 갈았다. 물숫돌. 어딘지 둥글둥글한 느낌이 들어서 마음에 들었다. 물숫돌은 문자 그대로 숫돌을 물에 적신 상태에서 날을 가는 것. 대야에 물을 받고 물에 숫돌을 담갔다가 꺼낸 뒤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다만 물숫돌은 대팻날을 가는 과정에서 물숫돌의 단면도 조금씩 깎여나간다. (날을 갈 때마다 아스팔트 위 타이어 자국처럼 검고 굵은 선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숫돌로 한 번씩 물숫돌의 수평면을 잡아줘야 한다. 다이아몬드 숫돌을 물숫돌 위에 대고 10번에서 15번 정도 슬슬 움직여주면 된다. 그렇게 하고 다이아몬드 숫돌을 떼어내면 물숫돌 위에는 식물 줄기와 비슷한 패턴이 고여 있다. 손에 물을 담아 따르면 그 패턴이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그게 은근 재밌다.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물과 돌을 가지고 놀던 게 생각나기도 한다.

칼을 갈 때도 한쪽 면만 갈지 않는 것처럼 대팻날을 갈 때도 아래쪽과 위쪽을 번갈아 갈아야 했다. 날 위쪽을 갈 때는 방법이 조금 달랐다. 날을 세로로 돌린 뒤 날의 경사면과 숫돌의 수평면을 바짝 붙인 채 힘을 주어 갈았다. 그럼 날끝이 미세하게 휘는데, 그건 날의 아랫면을 갈 때 잡아주면 된다. 그 과정을 2시간 정도 반복하면 날끝에 광채가 난다. 거울처럼 비춰볼 수도 있다. 대팻날이 잘 갈렸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날끝을 손가락에 대고 조금씩 움직여보는 것이다. 날이 지나가는 동안 내 지문의 높낮이가 짜릿하게 느껴지면 쓸만한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처음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대팻날을 갈 때는 통증이 심해서 좀 막막했다. 하지만 물숫돌을 사용한 다음부턴 평정심을 찾았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물숫돌을 다루는 것도, 물에 손을 넣었다 빼는 단순한 과정을 반복하는 것도 좋았다. 마음이 물처럼 느슨해지는 기분이었다. 선생님도 내 앞에서 같은 방식으로 끌을 갈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일 비슷한 것을 함께 하며 나누는 대화라서 그런지 더 느긋하고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대팻날의 상태를 점검할 때마다 하던 말을 멈췄고, 점검이 끝나면 했던 대화를 이어가거나 자연스럽게 주제를 바꿨다. 그러다 손재주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손재주와 디자인 감각의 차이에 대해서도. 뛰어난 제작 기술을 가진 이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들에 대해 선생님은 고민을 계속 해오신 것 같았다. 이른 바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선생님이 느낀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그들이 ‘제작 기술’을 두고는 활발하게 질문하고 토론하지만 ‘디자인’에 관해선 대체로 함구한다는 것. 선생님은 이 디자인이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왜 마음에 안 드는지에 대해 실컷 이야기해보고 싶었지만 번번이 불편한 반응만 되돌아올 뿐이었다고 했다. 물론 요즘은 그런 문화가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고 한다.


무언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인식하는 것과 그 중요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현하는 것 사이에는 먼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디자인 감각 역시 제작 기술을 단련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 아닐까. 하나의 기술에 능숙해지기 위해 수많은 동작과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의 고유한 비례와 선을 생각해내기까지 수많은 레퍼런스와 연습, 무엇보다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감각이란 것은 구축이 불가능할 것이다. 감각을 뾰족하게 세우는데 요구되는 직관과 의심, 어떤 종류의 깨어 있음이 없다면 금세 고여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재주가 좋다는 건 뭘까? 매뉴얼을 재빨리 파악하고 매뉴얼대로 고스란히 해내면 손재주가 좋은 걸까? 구조적으로 사고하고 조직적으로 수행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창조성이나 손의 꼼꼼함 같은 것? 나는 오랜 시간 손재주 없는 사람으로 지내와서 그런지 그게 뭔지 감이 잘 안 온다. 손재주란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자신감이 우두둑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아주 잘 해낼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재주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아름답고 멋진 것에 참여하고 그것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욕망들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게 꼭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 당장 가장 관심이 있고 조금은 진지한 자세로 배우고 싶을 뿐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여기서 조금 더 불안해질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 이게 나의 재능이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공의 뻐근함과 몽롱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