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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돌 Aug 28. 2020

핏방울 목공예

#5 끌 갈기 / 11월 둘째 주 토요일

날카롭고 날렵한 것이 좋다. 그래서 이미 날카로운 날을 더 날카롭게, 아주 날카롭게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이 날카로움의 한계가 어디까지 일까 궁금하게 만든다. 오늘은 끌을 갈았다. 톱이 큰 작업을 담당하는 도구라면 끌은 디테일한 부분을 깎아내거나 다듬을 때 사용하는 도구다. 톱, 그리고 대패와 더불어 가장 필수적인 수공구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작업을 하든 끌이 사용된다. 


특히 앞으로 내가 배우게 될 공법은, 나무에 홈을 파내고 그것을 다른 나무와 직접 조립하는 '짜맞춤 방식'이기 때문에 끌 사용법을 잘 배워둬야 한다. 나는 대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끌 사용법을 배우기 전에 가는 법부터 배웠다. 방법은 대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야에 물을 채웠고 물숫돌을 물에 담가둔다. 그리고 끌 끝의 앞면과 뒷면을 물숫돌에 대고 번갈아 움직이면 그만. 


나는 공방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기 다른 크기(4, 6, 8, 12mm)의 끌 네 개를 갈았다. 손톱과 손끝엔 금세 쇳물이 들었고 물을 자주 묻힌 탓에 손가락 끝이 부풀어 올랐다.


끌과 숫돌이 닿는 각도에 따라 끌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게 신기했다. 원래 직선에 가까운 형태여야 하는데, 균형이 틀어질 때마다 사선이 되어 갔다. 연필도 아니고 단단한 쇠일 텐데 힘을 더 줬다고 이렇게 끝이 변형되다니, 이게 뭘까 싶었다. 힘을 제대로 줘서 끌을 갈면 검은 쇳자국이 숫돌 위에 또렷하게 남는다. 꼭 아스팔트 위에 찍힌 타이어 자국 같다. 아무 생각도 없이 열심히 갈고 있었는데, 세 번째 손가락 끝에서 뜨거운 물에 댄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끌 끝에 벤 것 같진 않았는데 피가 나왔다. 줄줄 새고 있었다. 손톱으로 눌러서 지혈을 했지만 피가 잘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하니까 살짝 벤 게 아니라 손끝 몇 밀리미터 정도가 벗겨져 나간 거였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톱보다 끌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본인이 한 손으로 끌을 든 채 몸을 움직이다가 병원에 실려갔던 이야기도 해주셨다.


공방에 있는 전자식 톱을 볼 때마다 아찔한 기분이 든다. 크기도 공장에서 사용되는 기계처럼 크고 생긴 것도 무지막지하다. 버튼을 누르면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선생님이 각재를 자르기 위해 그 톱을 사용할 땐 끔찍한 상상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내가 사용하게 될 대부분의 장비가 위험할 것이다. 선생님은 매번 긴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20년 넘게 다룬 사람도 크게 다칠 수 있는 게 장비의 세계인 것 같다고. 정말 맞는 말이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끌 네 개를 모두 갈고 나서 짧은 칭찬을 받았다. 끌의 끝 모양이 직선으로 딱 떨어지지 않아서 내심 불만이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말이었다. 열심히 갈았던 끌의 나무 손잡이에는 쇳물이 들었다. 그래서 무척 오래 사용한 것처럼 보였다. 문득 내가 이 공구를 얼마나 사용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끌 하나를 사면 얼마나 사용하나요?" 나는 물었고 선생님은 "보통은 계속 쓰지요."라고 대답했다. 나도 계속 쓰게 될까. 지금 마음과 달리 얼마 못가 창고에 처박아 둘 수도 있고, 어쩌면 십수 년 넘게 손에 들고 있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끌을 손에서 놓게 되더라도 처음 끌을 갈면서 손가락에서 뚝뚝 떨어졌던 피에 대한 기억은 아주 오래갈 것 같다.


대팻날을 갈던 날보다 더욱 조용하고 차분하게 흘렀던 수업 시간이었다. 날씨는 이미 전기스토브를 켜야 할 정도로 쌀쌀해져 있었고 선생님과 나 사이에 이렇다 할 대화도 없었다. 나쁘지 않았다. 작업을 마무리한 뒤 나는 갈린 끌에 물기가 남지 않도록 끌을 수건으로 닦았고 케이스에 넣었다. 겉옷을 챙기고 인사를 했다. 내가 집에 돌아가도 선생님은 이곳에 더 남아 자신의 일을 하겠다, 이 생각이 들었다. 꽤나 춥고 조금은 고독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긴 시간 학교에 다녔고, 책을 해석하고 다시 내 말로 해설하는 일(만)을 해오며 지냈다. 그 일을 하며 겪었던 지난함과 답답함에 진저리 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위험천만한 세계라고 느꼈던 학교라는 공간이 나에게 피할 곳을 제공해주었는지 모른다.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선생님은 거의 모든 것과 대결하고 있을 것이다. "시스템에서 비껴서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시스템 바깥에 있는 이들을 위한 제도적 도움도 뒤따라오지 않을까요? 지금은 너무 없어요."라고 선생님은 말했던 것 같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공방 내부를 찍어두고 싶었다. 저 모든 걸 혼자 해내고 있는 선생님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 그런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 친구들의 얼굴을 생각을 하면서 잠시 아득해졌다.


Photo by Dominik Scyth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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