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데놀을 먹으며 이어진 직장생활 후반전에 대해
2019년 가을부터 인데놀을 먹기 시작했다. 낙하산 상사로 인한 극심한 고통으로 맥박이 빨리 뛴다는 나의 호소에 가정의학과 교수가 처방해 준 약이다. 약을 먹고 나서 7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안 먹으면 몸이 너무 힘든 경험 때문에 아침마다 미온수와 함께 꼭 챙겨 먹는다. 3개월마다 피검사를 하고 수치를 확인해도 큰 변화 없이 인데놀을 먹는다. 아직도 안 먹으면 가슴이 뛰는 증상은 여전하니까. 인데놀은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약이 되었는데도 작은 알약 하나가 나를 붙잡는 힘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다가 고선경 작가의 책에서 그 정체를 발견하고 멈칫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여유가 없을까. 늘 초조하고 마음이 급하다. 해야 할 일들, 하기로 마음먹은 일들이 필요 이상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모든 걸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렇게 초조한 마음으로는 어느 것도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아니, 잘할 거다. 잘해야 하니까.
의사 선생님은 내게 인데놀을 처방해 주었다. 심박수를 낮춰줘서 취준생들에게 면접 약이라고 불린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언제나 면접받는 기분을 느끼는 것인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멀어진 친구들에 대해서는 거의 매일 생각한다. 내 잘못이야. 그런데 무슨 잘못?"
- <내 꿈에 가끔만 놀러 와> 45쪽 '왜 나에게는 언제나 치사량인가'중에서
지금의 내 모습이 그 글 안에 담겨 있었다. 여유 없고 걱정 많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가 나에게 등을 돌렸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내 탓을 하던 모습이 글 속에 있었다. 일정 부분 느꼈던 안정의 힘은 인데놀의 힘이었을까. 왜 그 징글징글한 낙하산 상사를 만나지 않은지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인데놀을 처방받고 있는 거지.
여러 이유로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직장에서 25년이 넘게 일해왔지만, 부서 이동 없이 일한 탓에 다른 일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졌고, 해오던 일에서 멀어졌다는 자괴감이 깊었다. 실수를 할 때마다 이 일을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고, 그동안 욕했던 무능한 상사의 모습이 보여 싫었다. 부하직원들이 MZ세대를 표방하며 칼 같이 자기주장을 할 때도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 도제식 직장생활도 아니어서 뭐라고 한다고 해서 들을 친구들도 아니었다. 그들이 툭툭 내뱉는 말에 상처를 받으며 이것밖에 안 되나 하고 스스로의 역할에 실망이 컸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오던 일을 '글을 쓰는 일'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홍보며 연구며 부서 이름은 모양이 다르지만 큰 틀에서 글을 썼었다. 회사가 속한 업계의 권익을 위한 글을 작성했고, 소속사들에게는 회사가 얼마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주력', '총력', '불철주야' 등등 센 단어를 총동원하여 진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소 선동적인 역할은 인사이동 없이 자리를 지키는 힘이 되었고, 일종의 자부심이었다. 글이 필요한 곳에 내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한 달의 수익을 정산하고, 조직에 알릴 공문을 쓰고 있다. 부서 특성상 통상의 업무를 해내는 곳이라는 인식이 깊고, 조용히 일하다 보니 일의 중요성을 많이 알지 못한다. 매일 부지런해야 하고 꼼꼼해야 하는데 그 공을 몰라준다. 진짜 단돈 6,000원에 수만개의 데이터를 검증하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수치화된 보고내용이 많다보니 숫자를 잘못 복사하거나 엑셀에 수식을 잘 못넣으면 끔찍한 참사가 발생한다. 정이 들뻔하다 정이 다시 사라지는 일의 반복이다.
이제 남은 건 견뎌내고 있다는 자부심이다.억지로 만들어 낸 것 같지만 말이다. 과연 인데놀은 얼마나 더 따라다닐까. 고작 지름 0.9mm의 흰색의 작은 알약이 가져다준 안정감. 인데놀이 내 오랜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친구였음을 알게 되었다. 작은 한숨이 뿜어져나온다. 은퇴까지 남은 시간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