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친구들과 비교하며 경쟁하고 서로 시기 질투하던 모든 것에 너무 질려버린 탓에 성인이 되어 생긴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결과적으로 가족과 아주 친한 친구 몇몇 외에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삶을 살게 했다. 종종 안부 물으며 연락하는 사이를 굳이 유지하려 노력하지 않았고, 출산 후 조리원 동기 역시 만들지 않았다.
한 가지 모순인 점은 나는 참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란 것이다. 무관심으로 눈 감은 이 삶은 한 편으로는 외로웠고, 특히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더 외롭고 힘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려서부터 21세기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나는, 호랑이가 죽어 가죽을 남길 때 나는 죽어 내 아이를 다음 세상에 남기겠다 호언장담 했었던 나는, 독박 육아 약 18개월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GG.
난 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어쩔 수 없는 희생은 참고 인내하기도 하는 그런 강인한 엄마가 되고 싶어 했는데, 막상 해보고, 겪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육아 일기를 핑계로 예쁜 내 아이 자랑도 할 겸, 하루의 힘들었던 일들을 글로 풀어내기도 할 겸, SNS를 하고 있는데 ㅡ육아'소통' 등의 활동은 하지 않고 개인적인 '기록'의 공간으로만 활용하고 있다.ㅡ 코로나19 때문에 구정 때 친정 다녀온 걸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외식 한 번 나가본 적 없고, 외출을 해도 실내는 가지 않으려 신경 썼고, 실외를 걷더라도 아주 잠깐 코에 바람 넣고 후다닥 들어오는 수준이 다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이집 적응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에 대한 피드와 주말마다 공원 등 야외로 나가는 가족의 피드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ㅡ물론 집콕 육아의 글들은 훨씬 더 많지만ㅡ
전화기를 들었다 내렸다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망설였다. 적어도 두 돌까지는 내가 곁에서 봐주고 싶어서 신청한 육아 휴직이었기에 더 망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긴 고민 끝에 어린이집 긴급 보육을 신청했다.
첫째로는 엄청난 스펀지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들과 행동을 다 흡수하고 있는 아이의 이 성장기를 집에서만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는 게 보이는데 집에만 있기에는 이 황금 같은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둘째로는 훈육이 가능해졌으면 ㅡ제발ㅡ 좋겠다 싶었다. 우리도 집에서는 맘 편히 늘어지듯 뭐든 내 마음대로인 아이에게 ㅡ나는 알려주고 타이르고 때론 혼내고, 한다고 했는데... 아이는 웃고 도망가기 일쑤였고 내 말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ㅡ 되고 안 되고, 하면 안 되는 위험한 행동을 하면 혼나고 등의 그런 것들을 일러줄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했다. 셋째로는 친구와 노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형제자매 없이 첫째 아이라서 그런지 사회성이나 사교성이 좀 부족해 보였는데 가끔 만나는 사촌지간에서 그 부분은 확연히 드러났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단체 생활을 겪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도 좀 살고 싶었다. 단 한두 시간이라도 이 가쁜 숨 좀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그렇게 해서 18개월이 된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한 지 이제 약 2달이 되어간다.
어린이집마다 분위기라든지 지침 등이 다를 테지만 어쨌든 내 기대와 예상보다는 적응기를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진행하는 편이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1시간~1시간 30분 동안 엄마가 원에 같이 있었고, 그다음엔 1시간만 함께 있다가 30분 동안은 엄마만 잠시 나갔다 왔다. 처음 떨어지던 날은 30분을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30분을 엄마 없는 허전한 교실이 아닌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로 야외활동을 하기 시작한 이튿날부터는 더 울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약 보름이 흘렀고 이제 어린이집 입구에서 엄마와 헤어질 차례다. 첫날은 당연히 엄마가 함께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안 들어오고 가버려서 적잖이 충격이었나 보다.
아이가 어릴 때 몬테소리 오감발달 수업 ㅡ오감발달 수업을 핑계로라도 엄마들 외출해서 '부모 수업'을 들으라는 게 더 본 목적이라는 수업이다.ㅡ 을 오래 들었었는데, 나는 요즘 엄마들처럼 섬세하고 꼼꼼하게 어쩌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이를 감싸 안고 돌볼 마음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ㅡ우린 어렸을 때 모래도 먹고 자라지 않았냐는 꼰대스런 이야기나 하는 편이다.ㅡ 몬테소리의 육아 철학은 아이가 스스로 잘 해내길 바라는 내 가치관과도 비슷했고 아이가 커가는 개월별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때 들었던 조언 중 하나가 새로운 장소를 가기 전, 조리원에서 집으로 가기 전에도 미리 아이에게 우리가 다음 주면 집을 간단다.라고 이야기해주고 가면 이곳은 네가 생활할 거실이란다. 계속 말해주어서 아이가 적응을 잘 해낼 수 있게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미리 말을 많이 해주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하물며 밥을 먹거나 기저귀를 갈 때도 우리 밥 먹을까? 기저귀 갈자! 등 먼저 말을 하고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어린이집 등원을 앞두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계속, 자주 말해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없는 혼자는 아직 많이 무서웠나 보다.
혼자 등원한 첫날 또 한 시간 내내 울었고, 아이가 걱정된 선생님은 다시 30분씩 천천히 떨어져 있어 보자 권하셨다. 헤어질 때 울기를 며칠 반복하더니 폼폼이로 액자 만드는 미술 놀이 ㅡ아이가 그림 그리기, 스티커 붙이기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ㅡ 를 한 날부터는 헤어질 때 울지 않고 데리러 갔을 때도 울지 않고 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서 첫 등원을 한지 거의 한 달쯤 되어서는 1시간 남짓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점심까지 먹고 약 2시간 30분 여정도를 보내고 하원 한다.
내 아이보다도 늦게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지인의 아이는 등원 첫날부터 2시간 반을 있다 왔다길래 처음에는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너무 몸 사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 어릴 적이 생각났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암투병을 하셨고 외동 며느리셨던 엄마는 내가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병원을 오가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계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엄마가 집에 도착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하원 했고, 벨을 눌러도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는 현관문 앞에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큰 공포감에 휩싸여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하원 시간만 되면 원장 선생님 몰래 원장실에 들어가서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가 집에 계신지 확인했던 것 같다. 며칠을 그러다가 내 행동을 원장 선생님께 들켰던 기억과 수화기 너머로 "엄마 집에 있으니 이제 전화 그만하고 와도 된다."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고, 그 이후로 내가 마음의 안정감을 되찾았는지 어쨌는지 더 이상 그 해프닝에 대한 기억은 없다.
생각해보니 그래도 내가 '혼자'에 대한 무서움을 겪은 건 대여섯 살은 되서였을텐데, 내 아이는 고작 18개월인데 난데없이 독립을 겪고 있는 셈인 것이다.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을까. 집콕&독박 육아에 지쳐버린 엄마의 욕심에 덜컥 보내버린 어린이집. 금방 잘 놀지 않을까? 가볍게 짐작했던 탓에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는 적응하는데 통증에 꽤 겪었고, 그걸 모두 지켜보고 기다려야 했던 초보 엄마인 나도 꽤 당황했고 미안했고 걱정되었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대다수인 요즘은 생각보다 훨씬 어린 개월 수의 아이들도 어린이집에 맡겨지고 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도 언젠가는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더 어린아이도 잘만 다니던데! 라며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말 못 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집을 떠나고 엄마, 아빠 품을 떠나서 혼자 있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를 준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집을 옮기는 건 더더욱. 실제로 지인의 아이는 집에서 좀 먼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는데, 대기 중이던 집 근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었음에도 옮길지 결정을 못하고 몇 달을 고민했다고 들었던 적 있다.
기질적으로 우리 아이는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격하게 드러나는 편이었고, 받아들이고 나면 미련 같은 거 가지지 않고 쿨하게 보내주는 편이었다. 2달쯤 된 지금 결과적으로는 첫 독립, 첫 사회생활을 나름 꽤 성공적으로 적응해냈고, 그런 아이가 정말 기특하고 대견하다. 엄마와 있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함께하는 시간이 곱절로 소중해졌다. 아이도 부족한 애정을 꽉꽉 채워 받고 싶은지 ㅡ그런 티를 내려는 건지 최근 들어 손을 빠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ㅡ 더 많이 사랑한다 표현해주고 안아주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