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8년 1월: 프랑스 파리 1주일
2018년 5월: 이탈리아(로마, 피렌체, 베니스) 4일 + 프랑스 파리 3일
2019년 5~11월: 프랑스 파리 6개월 + 영국 런던 4일
2023년 1월: 스위스 4일 + 프랑스 파리 4일
2019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온 뒤 3년 만에 유럽행을 결정했다. 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다 하더라도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겠지만 그 쉬운 한걸음이 내게는 무엇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뭔가 대단한 작정을 해야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잘 자잘한 짧은 여행들은 안 가느니만 못할 것 같았다. 마음만 더 어지러워지고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면 떠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을 거 같았다. 겁쟁이가 되어버린 나는 유럽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꿈꿨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봉인한 채 서랍 속 작은 비밀 상자에 숨겨놓았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흘러 어느덧 2023년이 되었다. 파리 생활을 하던 동안 글로 꾸준히 적어왔던 기록들은 마무리되지 못한 채 먼지만 가득 쌓여버렸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직장을 잡았고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하나씩 되찾아가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끝까지 가보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덩어리가 미련한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이었다. 유럽에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게든 길게든 기간에 상관없이 어찌 됐든 가봐야 할 거 같았다. 계속해서 이렇게 고집만 부리다가는 모든 것들을, 내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한 수 접고 녹슬어가고 있는 마음이 완전히 닳아버리기 전에 짧은 휴가라도 내어 유럽에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의 구성은 언제나 그렇듯 ‘프랑스 파리+다른 나라 하나’. 첫 번째 유럽여행이 온전히 파리 한 곳이었단 걸 제외하면 나머지 세 번이 모두 다 그랬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애증의 도시’ 파리도 사무치게 그리웠고, 낯선 도시에서의 신선한 경험과 그로 인해 피어날 새로운 감정에도 구미가 당겼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이가 없는 그곳에서 온전히 새로워지고 자유로워지는 그 기분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이만하면 참 오래도 참았다.
그런데 그토록 그리웠던 유럽여행을 앞두고서도 사람은 참 안 바뀌나 보다. 아무리 평소에 계획을 잘 안 세우는 충동적인 타입이라 하더라도 유럽여행을 앞두고 짐을 30분 만에 싸서 부랴부랴 나서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지 않을까. 토요일 오전 비행기를 넉넉하게 타기 위해 공항 근처 호텔을 금요일에 잡아두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어찌 됐든 금요일 저녁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에 가기 위해서는 미리 채비를 어느 정도 해뒀어야 했는데 바로 그날까지도 아무런 짐을 싸두지 않았던 나는 공항버스 막차 시간을 코앞에 두고 닥치는 대로 짐을 챙겨 버스가 떠나기 직전에서야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다행히 꼭 필요한 준비물들은 얼추(?) 챙긴 듯싶었다. 여권도 있고 돈도 있고 옷도 있고 손톱깎기도 있었다. 유심을 놓고 온 것이 뒤늦게 떠오르긴 했지만 그쯤이야 새로 하나 사면되지 뭐. 기막힌 자기 합리화 능력으로 스스로를 납득시켜 둔 뒤 호텔에 짐을 풀고 크래커와 와인 한 잔을 마셨다. 복잡한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이상 다가올 일들은 시간에 맡겨야 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