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많은 여자, 느려도 괜찮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by 길치

회사에서 보면, 유독 사연이 많아 휴가가 잦은 동료들이 있다.

아파서, 집이 멀어서, 집에 일이 있어서..


각자의 사정을 다 알 순 없지만, 막연히 프로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참 사연도 많다, 많아'


그러나 내가 그 입장이, 아니 더 할 줄은 그땐 몰랐지.

당시 나는 젊고, 아이도 없었으며, 부모님도 한참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하셨으니까..

지금 생각하니 참 건방지다.


워킹맘의 시간은 남들의 24시간이 아닌 것을 몰랐고,

부모님이 나 이때쯤 아플 거니까 준비해라~라고 말씀해주시지 않는다는 걸 몰랐고,

높은 이혼율에 내가 포함될 줄, 그래서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될 줄 몰랐고,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할머니가 계시니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될 줄만 알았고,

회사는 늘 잘 될 줄만 알았으며,

내 몸 또한 늘 쌩쌩할 줄만 알았지.




쉽지 않은 자영업자의 길

적당한 쪼임이 있는 조직 생활이 오히려 편했고, 내 일만 잘한다면 영업에 대한 압박이나 세금 등 골치 아픈 것들을 신경 안 쓸 수 있는 아름다운 회사 생활을 그만두게 된 건, 조직에 묶여서는 이 많은 사연들을 처리하기 힘들어서가 가장 큰 이유이다.


어찌어찌 인생 계획에 없던 공인중개사, 행정사가 되어 생애 처음 '개업'이란 걸 하면서 가장 크게 기대했던 건 내 시간을 관리하면서 일도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게 자영업의 큰 장점이기도 하다. (휴일 없이 묶여야 하는 단점도 있지만..)


그러나 왠 걸, 나는 또 다른 압박을 느끼고 있다.


에너지 넘치시는 선배님들의 지금이 중요하다! 달려야 한다!는 조언에 쪼그라든다.

아이도 하나이고 많이 컸는데, 아이 일로 계속 자리를 비우니 극성엄마로 보일까 봐 신경 쓰인다.

홍보수단인 블로그에 동기들의 포스팅이 쭉쭉 올라오면 나는 뭐 하나 싶어 한숨이 난다.

슬슬 들리는 동기들의 수임 소식에 축하하는 한편 초라해지기도 한다.


일 해야 하는데..

블로그 써야 하는데..

공부해야 하는데..


'추진력이 장점이고, 무모함이 단점입니다!'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작 일은 못하고 있는 상황은 내 단골 멘트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설명이 꼭 필요한 건 아니야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동기들과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위축되는 느낌이다. 일에서만큼은 항상 자신 있었는데 말이다.


새로운 분야에서 선뜻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내 상황을 설명하고 싶어진다.

'저는 이런 이런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빨리 못 가요!'라고 외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그러나 남에게 하는 설명은 부질없다.

설명이 오히려 독이 되는 걸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우선순위

일에서도, 삶에서도 혼란스러워 길을 잃을 때는 늘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게 있다.


바로 우선순위!


현재 나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물론 새로 시작하는 일도 중요하다. 평생 직업으로 선택했으니 더더욱 잘하고 싶다.

그러나 일은 조금 늦게 잘해도 괜찮다.


지금 나의 우선순위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아이의 몸과 마음의 건강이다.

그걸 잊지 말자고 오늘도 흔들리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사회인으로 살아오면서 일 욕심이 있다는 건 장점이었다.

꾸준히 성장했고, 회사 내 위치가 올라갔고, 연봉도 올라갔다.

나는 항상 바빴고, 더 잘하고 싶어 공부하며 나를 성장시켜 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현재 상황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 사실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해줘야 하는데, 이리저리 시간을 쪼개 쓰고도 부족한 성과에 스스로 쪼그라들고 있다.


사연이 많건 적건, 현재의 내 삶의 부피를 인정하고 그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다.

앞서가는, 아직은 가벼운 동기들을 보며 내가 우선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상의 과제들이 부담스러웠음을 고백한다.


지금 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커버 사진 : 아이와 산책길에 만난 꽃






매거진의 이전글쑥아, 우리 이제 Good Good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