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아, 우리 이제 Good Goodbye!

쑥을 뗀 이야기

by 길치

1980년대 그 시절 탁구계에는 정현숙, 농구계에는 강현숙 선수가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선수로서의 멋진 기량을 펼치는 것 외에도 아름답기까지 했다.


나의 아버지는 그녀들이 멋졌다. 나의 큰 딸도 저렇게 멋진 여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1980년 2월, 그렇게 나는 '현숙'이가 되었다.

그리고 46년 후, 나는 '숙'을 떼고 '현'이 되었다.




현숙이가 어때서..

개명한 사람들의 전의 이름을 들어보면 대부분 고개가 끄덕여진다. 음.. 바꿀만하군.


그런데, 현숙이는 사실 개명의 그 귀찮은 절차를 감당할 만큼 이상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냥 현숙이로 살면 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이름 끝자인 '숙'을 떼어버리고 싶어졌다. 안 그래도 답답한 삶에 더 답답함을 더하는 느낌이 들었다. '맑을 숙'이라는 한자의 의미와 다르게 어감이 주는 느낌이 그냥 답답했다.


쑥아, 쑥언니, 쑥님...

지인들은 조금 친하다 싶으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쑥'이라는 애칭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쑥'이 싫어라고 반박하기엔 지인들이 불러주는 게 나쁘지 않았고 그렇게 까칠한 성격이 아니기에 자연스레 '쑥'이 되어 살았다.


본래 의미와는 다르지만 '쑥대머리'라는 노래의 음 만으로 내가 대머리가 된 것 같이 움찔하기도 했다.

즉 '쑥'은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이었다.


그렇다면 '현'은?

마지막 직장은 영어 이름을 사용하였어야 했다. 그 전에 외국계 기업을 10년을 넘게 다니면서도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던 건 '현숙'이란 이름을 너무나 애정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나와 맞는 영어 이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 영어 이름을 써야 하는 환경이 되어 골치가 아팠는데, 너무나 간단하게 지인이 솔루션을 주었다. '현'으로 하면 되겠네.


문제가 안 풀릴 땐 더하기보다 빼기가 낫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그렇게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현'은 본명보다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진짜 '현'이 되다

나는 지금 행정사로서 개인 사업자를 준비 중이고 여느 사업자처럼 사무소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름 석자를 사무소명으로 거는 경우가 많지만 내 이름을 걸기엔 '숙'이 너무나 거슬렸다.


그래. 심플하게 가자. '현'으로 합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숙'도 떼어버리자.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한파가 지난 2월 어느 날, 개명 결정 소식을 받았다.


이제 빼박이다

개명 결정 후 바로 설 연휴여서 이제야 하나하나 개명 후 절차를 밟고 있다.


개명 후 바꿔야 할 것들이 어마어마한데, 정말 늪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민등록만 바꾸면 일사천리로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격증 하나 바꾸는데도 구청을 몇 번을 갔던가.

정부 24에 그 수많은 정보와 인증을 거치고 짜잔~ 하고 마무리하려 하면 애플에서 허용하지 않는 보안프로그램이라며 퉁퉁 튕기기 일쑤다. 그러니 내 발로 직접 움직일 수밖에...


아직도 바꿀 것들이 산더미다. 전 세계 으뜸이라고 믿었던 우리나라 행정시스템도 아직은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행정사가 되었으니 익숙해져야 할 텐데 말이다.




대단한 결심과 의도를 갖고 바꾼 이름은 아니지만, 이제 '현'으로 새 삶을 살아야 한다. 새 이름으로 살아갈 반백년은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먼 훗날 하늘에서 아빠를 만나게 되면 아빠에게 이 말을 듣고 싶다.


'현숙아, 수고했다. 탁구선수 정현숙만큼, 농구선수 강현숙만큼 넌 예쁘고 멋진 여성으로 잘 살아주었구나.'


마지막으로..

쑥아, 우리 이제 정말 Good Goodbye!




배경 사진출처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2611



매거진의 이전글제 합격 키워드는 '꾸역꾸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