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합격 키워드는 '꾸역꾸역'입니다

13회 행정사 합격

by 길치

합격자 발표 전 날, 나도 여느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싱숭생숭한 하루를 보냈다.

내용은 모두 채웠지만 뭐 하나 특출 나게 잘 썼다 생각한 답안도 없었고 오히려 논점 이탈이 몇 군데 보여 깔끔하게 내려놓기로 마음먹고 두 달을 보냈었다. 그럼에도 혹시.. 란 마음이 없지 않았음은 거짓말이기에 기대감 10% 정도와 다시 수험생활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90%에 내 마음속 원숭이는 가만있지 않고 요리조리 뛰어다녀 마음을 어지럽혔다.


발표일 9시 정각, 큐넷에 로그인하기 위해 아이디와 비번을 입력하는 중 먼저 도착한 합격 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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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합격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화장실에 있던 아이를 불렀다.

"딸, 엄마 합격이래."


화장실에서 급하게 뛰어나온 아이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놀라 급하게 올라오신 엄마와 부둥켜안고 울었다.

합격이래. 합격이래.




행정사 2차 준비를 함께 한 수험생 모두 각자의 힘든 사정이 있을 것이고, 치열하게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갈아 넣으면서 준비했을 것이다. 올해 합격률은 10%가 채 안 된다. 법학과 출신이나 관련 경력이 없는 담에야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비전공자 수험생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시험이다.


나에게도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상황이 있었고,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도 될까 말까인데 나의 집중력과 시간을 할애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중간에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상담사는 시험은 내년에도 기회가 있으니 지금 당장의 문제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했다. 포기하기는 너무 아깝지만 상담사 말이 맞기에 시험은 내려놓자 맘먹었다.

그럼에도 깨끗이 포기하기엔 남은 시간이 아까워 그 시간에 공부를 했다.


엄마로서 내 몫을 다 하고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했고, 낮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또막또막이라도 공부했다. 다른 수험생들처럼 많은 답안지를 써본다거나 모범답안을 그대로 외우지는 못했다. (사실 그래서 이번 시험에 합격한 것 같기도..)


시험을 두 달 남겨두고 서브노트를 만들면서 계속 읽고 수정하다 보니 자연스레 토씨하나 똑같이 쓸 순 없어도 머릿속에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무조건 암기를 해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었지만, 내용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암기는 적어도 나에겐 의미가 없었다.


시험 전날까지도 서브노트에 컴퓨터로 형광펜을 칠하고 지우고 끝까지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빨간색으로 바꿔가며 그렇게 마무리했다.


시험 전날, 사춘기 아이와의 언쟁으로 내 기분은 한 없이 땅으로 꺼졌고 이런 시끄러운 마음으로 시험장에 가봤자겠다 싶어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강력히 들었지만, 기분에 좌우되기엔 내 노력과 미래가 너무 아까웠기에 감정을 분리하여 서랍에 두고 덤덤하게 시험장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판례에 당황도 하고, 알쏭달쏭한 문제가 고민도 되었지만 길게 고민할 충분한 시간이 없어 무작정 아는 걸 써 내려갔고, 모든 문제에 대한 답안을 잘 쓰진 못했어도 모두 채우긴 했다.

2교시가 끝나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결과와 상관없이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응원도 배려도 없는 수험기간이었지만 꾸역꾸역 내 할 일을 하며 끝까지 온 나에 대한 대견함과 안쓰러움에 대한 눈물이다.


그리고 두 달간 이렇게 인생을 낭비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놀았다.

그러나 몸은 놀았지만 마음 한편은 늘 심란하고 걱정되었기에 불안함을 잊기 위해 퍼즐책을 사서 몇 시간을 풀기도 했다. 하면서도 정말 시간을 낭비한다 싶었지만 그거라도 붙들고 있으면 좀 나았는데, 신기하게 합격 발표가 나니 퍼즐책을 열지 않게 되었다.


정말 많은 시간 투자하고 내용 이해가 많이 되신 분들에 비해 내 식대로 최소한의 시간에 효율을 내려했기에 공부방법을 쓰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간단히 요약하면, '서브노트를 계속 수정하며 강제로 읽게 되어 디테일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으며 시간이 없고 마음이 힘든 날의 연속에서도 꾸역꾸역 자투리 시간을 활용했다.' 정도 되겠다.




합격자 발표 후, 다음 날은 박문각 합격자 환영회, 그다음 날은 대한행정사회 합격자 환영회로 갑자기 바쁜 이틀을 보냈다. 매일 집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니 설렘과 많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행정사로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자격증 취득은 문을 열어준 것에 불과하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어디로 가느냐는 이제부터 또 다른 도전이다.

불합격을 확신했기에 어떤 영역에서 활동해야 할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사실 행정사의 업역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한다. 이제 행정사의 일과 내가 어떤 부분에 강점이 있는지, 어느 부분을 주력으로 할지 고민할 시간이다. 많은 고민은 금물, 빠르게 길을 찾고 시도해야 한다.


블로그에 합격 키워드를 남긴다면 이렇게 남기고 싶다 했었는데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제 합격 키워드는 꾸역꾸역입니다."


14회 행정사 시험 준비하시는 분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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