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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을 봤다. 너무들 인생작이라는 사람이 많아서 어느정도이려나 생각했는데 너무 좋았고 많이 울었다. 그야말로 예술이 주는 힘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영화였다.
뉴욕의 한 중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 재즈 공연을 하며 아티스트로 살고 싶어 하는 그가 학교의 정규직 자리를 제안받은 바로 그날, 유명 재즈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조는 일생일대의 기회에 기뻐하다 맨홀에 빠져 갑자기 영혼으로(soul) 변한다. 너무 어이없고, 기가 막힌데 다른 영혼들은 사후세계(the great beyond)로 순순히 향한다. '말도 안돼 난 이렇게 죽을순 없어!!!' 하고 정 반대편으로 무작정 달려가다 평화로워 보이는 어떤 곳으로 뚝 떨어진다. 천국, 아니면 혹시 헬이냐고? 픽사는 태연하게 말한다. '아니, 태어나기 전 세상이야(the great before)'
※아래 글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태어나기 전 세상의 흥미로운 점은 우선 영혼들의 성격이 대강대강 결정되어 태어난다는 점이다. 태어나기 전 세상의 관할자인 제리들이 영혼들에게 소심하고, 욕심 많고 등등 개인의 특성을 부여하지만 균등하게 배분하지도, 어떤 심오한 룰에 의해 부여하지도 않는다. 기본 성향은 타고날 수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과 교육 들로 인격이 형성되는 것처럼 변화의 여지를 열어둔다. 그렇기에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퍼즐은 불꽃이다.
룰은 이렇다. 태어나기 전 세상에 있는 영혼들은 멘토 영혼과 매칭 되어 자신만의 불꽃을 찾아야 한다. 불꽃을 찾은 영혼은 지구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얻는다. 얼결에 멘토가 된 조는 불꽃을 찾으면 지구로 갈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얻는다. 그런데 인생은 현생에서나 사전 세계에서나 쉽지 않다. 하필 매칭된 영혼이 마더 테레사 수녀도 포기했다는 영혼 22번이다. 지구에 가고 싶지 않다는 22번에게 조는 자신이 꼭 다시 살아야 하고,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고 어필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22번의 불꽃을 찾는 일은 실패한다. 조를 안타깝게 여긴 22번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샛길을 찾아준다. 그리고 실수로 같이 떨어져 22번은 병실에 누워있는 조의 몸속으로, 원래의 조는 병실에 있던 고양이의 몸속으로 들어가버린다.
지구에서 조의 재즈클럽 데뷔를 돕던 22번은 조의 몸으로 지구에서의 삶을 경험하다 삶이라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 조가 영혼을 바꿔 재즈클럽에 들어가 고대하던 순간을 맞이하려는 순간, 22번은 자신의 불꽃을 찾기 위해 저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목표를 이루기 직전, 다시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진 조와 22번. 어느새 불꽃을 찾아 지구 통행증을 얻게된 22번을 보고 조는 소리친다. 그 불꽃은 내가 만든거라고.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위해 태어난 내 몸속에 있었으니까 네가 얻을 수 있었던거라고. 그 말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22번은 지구 통행증을 조에게 던지고 사라진다.
이윽고 조는 제리에게 묻는다. "근데 22번의 삶의 목적은 어떻게 찾아진거에요?"
제리는 답한다. "삶의 목적이라뇨? 멘토들은 꼭 그런다니까. 불꽃은 목적이 아니에요. 불꽃은 그저 지구로 내려갈 준비가 될 때 채워진답니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불꽃을 삶의 목적도, 흔히들 말하는 재능도 아닌 그저 '마음가짐'으로 표현한다. 너무나도 이상적이지만 따뜻한 설정이다. '분명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누구에게나 재능이 하나는 있다는데 나는 왜 그 재능이 보이지 않나.'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이렇게 이룬 것 없이 살아도 되는 건가.' 픽사가 말하는 불꽃은 요즘 사회에 특히나 더 만연하게 퍼져있는 모든 머리 아픈 질문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마법약 같다.
영화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조가 그토록 꿈꿔왔던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마친 뒤 어딘가 모를 공허함을 느낀 채 집에 돌아온 후부터 시작된다. 그토록 소원하던 목표를 이룬 순간에 조는 왜 공허함을 느꼈을까.
관객은 특정한 순간에 스크린 너머 영화 캐릭터와 교감하게 되는데, 바로 조가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자신의 삶을 떠올리며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는 지점이다. 재즈클럽에서 청중들을 향해 멋진 연주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연주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그 부분이 관객과 영화 속 캐릭터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조는 피아노를 치며 22번이 지구에서 행복해하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피자라는 음식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볼 때 지었던 표정, 환풍구에서 바람이 나오는 게 재밌다며 대자로 누워서 바람을 만끽하며 지르는 환호성, 가을 낙엽이 햇빛과 만나 빛나며 떨어지는 순간을 바라보던 눈빛.
그리고 자신의 삶을 회상한다.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혼자 티브이를 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만 남은 자신의 삶을 '의미 없는 삶'이라 칭했던 조는 그 순간들에서 자신이 행복을 느꼈던 지점을 떠올린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했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따라오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했음을 기억한다. 관객들은 조가 회상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영화는 일상에 치여 미처 잊고 있었던 순간순간의 행복한 기억들을 꺼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후세계에 대한 상상만 하게 되는 세상에서 태어나기 전 세상을 너무나 그럴듯하게 표현해준 픽사.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와 미래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번 영화가 특히 좋았던 이유는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는 사실을 아프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어서다.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발전할지 알 수 없고, 사전 세계가 있는지 사후세계는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건 우리의 삶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관점을 바꿔야 한다. 목표를 실현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나가는 삶이든 다른 사람들보다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삶이든 그 모양은 상관없다. 그 속에서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만들고 기억하면 된다. 삶이 끝나기 전에.
좋은 영화는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소울>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해서 내 삶의 형태나 방향성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처럼 단번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삶을 사는 데에 있어 꼭 목적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메시지를 잘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을 다독인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행복했고, 다독임을 받았고, 지친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을 받았다. 그 힘이 얼마나 가든 그 자체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