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해본 이런 상상, 뮤지컬 이프덴에서 보여드립니다.
이혼 후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뉴욕의 어느 날 오후. 엘리자베스는 두 명의 친구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아차, 그런데 만날 시간이 겹쳐버렸네? 리즈라고 부르는 어제 만난 이웃주민 케이트를 따라 파티에갈까? '리즈는 무슨 리즈야 베스 어때 베스' 를 외치고 있는 오랜 친구 루카스를 따라 집회에 참석할까? 조금 고민되긴 하지만 단순한 선택. 하지만 그 선택으로 파생되는 연이은 사건들은 전혀 다른 모양이다. 케이트를 따라간 리즈는 조쉬라는 멋진 남자를 만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남자는 멋지지 않은 확률을 가지고 있고. 루카스를 따라간 베스는 완벽한 커리어를 쌓아가지만 마음을 둘 곳이 없어 방황한다.(인생은 어떻게해도 모든걸 가질 수 없구나)
뮤지컬 이프덴은 '만약에 내가 그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기심과 공감대를 가지고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현재에 집중하는 타입이라 그런 생각을 설령 해보지 않았다고 해도 이번 작품을 보며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될테니, 사실상 주제만으로도 모든 관객과 라뽀를 형성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1막이 끝나고는 한 번의 선택으로 너무나도 달라진 둘의 인생을 보고, 마음속으로 어느 쪽이 나은지, 나라면 어디를 선택할지 비교하고 재단하기 바빴는데. 2막은 그 고민이 부질없을 만큼 큰 주제를 담고 있어서 '내 생각이 작았구나' 하며 허탈하기도 했다. 한 번의 선택으로 다른 길을 걸어오는 인생이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혼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소멸된 사랑과 꿈과 시간 속에서 또다시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리즈와 베스를 보면서 극 말미에 나온 넘버 속 '선택은 하나'라는 가사가 너무나도 와닿았다. IF도 중요하지만 결국 현재 내 삶에서 IF는 없다. 내가 내린 선택은 하나이기 때문에.
다른역할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프덴은 엘리자베스라는 주연의 역할이 80%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크다. 리즈와 베스의 양분된 인생을 쉴 새 없이 넘나들어야 하는데다가, 또 그 속에 있는 공통적인 감정을 끌어올려야 하는 매력적인 역할이다. 정선아, 유리아 배우 모두 이 역할에 잘 맞을 것 같지만 40이라는 나이를 목전에 둔 엘리자베스 역할에 박혜나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이프덴이 재연 삼연을 거듭하게 된다면 배우들에게 도전해보고 싶고 탐나는 역할로 자리잡지 않을까. 이번 이프덴 초연 공연은 2월 26일까지 진행된다.
(왓더퍽을 이렇게 잘 소화한다고? 혜나배우의 왓더퍽이 아직도 귓가게 생생하게 맴돈다. 귀여운게 아니라 정말 내인생 망했다 어쩌냐의 느낌을 제일 잘 담을것 같은 배우다.)
IF는 참 낭만적이면서도 냉정한 단어다. 걸어보지 않은 길을 상상하는 꿈과 낭만이 들어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IF는 있을지 알 길이 없고, 어쩌면 생에 절대 없을 일을 상상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이기에 그렇다. 공연장을 나오며 인생에서 IF를 잃지 않되 매여 살지 않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넥스트 투 노멀'팀의 창작물인 이번 작품은 국내 초연이지만 앞으로 재연 삼연을 거듭했으면 좋겠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넘버도 가사도 귀에 쏙쏙 박혔고. 무대 디자인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영상 맵핑이 깔끔하고 사실적이어서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정말 뉴욕과 브루클린에 와있는 느낌이 들어서 스토리와 인물에 더 몰입하게 되었던 느낌. 또 무엇보다 넥투노에 이어 이 창작진들이 사람의 삶을 얼마나 다면적으로 생각하는지, 또 애정과 증오의 감정을 얼마나 잘 다뤄내는지 알게되어 좋았던 등등 재연 삼연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요소가 한가득이었다. 오랬동안 떠나있던 브런치로 다시 돌아와 글을 쓰게 만든 만큼!
인상적인 대사. 나는 운명이란 수많은 선택지중에 선택한 게 됐을뿐이라고 생각해.
사랑하게된 넘버. You learn to live without
캐스팅 추천.
- 엘리자베스 : 박혜나 (이미지가 찰떡, 정선아 유리아 배우도 보진 않았지만 잘 맞을 것 같은 느낌)
- 조쉬 : 조형균 (조쉬랑 그냥 찰떡)
- 케이트 : 최현선 (가창력이라는 것이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