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살며 마당가꾸기
올해도 여전히 이른 봄부터 밭을 갈고 좋은 흙을 사고 호미로 마당을 고르며 바지런을 떨었다.
그러나 예년과 다른 점은 상추, 호박, 고추, 토마토, 뭐 없어 보이는 이런 먹는 야채소 말고,
나긋나긋한 모습으로 들꽃을 키우는 그 아름다운 유튜버처럼, 고상하게 꽃만 심자.
그것도 다년생 필요 없다. 딱 일 년. 한 해 동안 만족스럽게 볼 수 있는,
계절마다 바통을 받아 피고 지는 일 년생 꽃들로만 심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좋은 흙을 사고, 고가의 씨앗까지 잔뜩 사서 키친타월에 분무기 살살 뿌려가며
애지중지 씨앗을 발아시키던 내 의지와 집념은 그럭저럭 5월? 6월까지였다.
장미들이 진딧물과 천사벌레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그 벌레들을 퇴치하겠다고 독한 농약을 샀다. 분무기와 정원 호스도 샀다.
그런데 약이 그렇게 독한지 몰랐다.
정해진 비율대로 희석시켜서 뿌려야 하는데 적당히 타서 오월의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뿌렸다. 벌레들이 죽어 나갔다. 아직 벌레가 보이지 않아도 예방하는 차원에서 꼼꼼히
여기저기 뿌려댔다.
덕분에 그 스프레이의 세례를 받은 식물은 바짝 말라 까맣게 타버렸다.
이삼일 발을 동동거리며 뒤늦게 물로 헹궈내려 애썼지만,
보드랍고 다소곳한 장미 봉오리처럼 연약한 나의 열의도
갉아 먹히고 까맣게 시들어 버렸다.
올해는 비 오는 날이 유난히 잦았고, 지구는 매년 이례없이 뜨거워지고 있다.
에어컨 프레온가스가 오존층을 파괴시키네 어쩌네 하는 소리는 희미해진 지 오래다.
에어컨은 전 국민의 필수 가전이 되어 버렸다.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을 지경이었고
그렇게 문 밖에 높은 온도와 습도 덕분에
마당의 초록들은 무서운 기세로 짙어지는 무성해졌고
나는 그 기세에 밖으로는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마당은 마당이라고 부르기엔 무시무시한 한 무더기의 초록 괴물이다.
*마당:집 주위에 닦아 놓은 평평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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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저 덤불을 외면하고 싶었나 보다.
내 마음을 외면하고 있듯이.
마음이 복잡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헷갈린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마음을 다 잡고 저 무시무시한 초록이들을 뽑아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장갑을 끼고 나섰다.
아, 여기서 잠깐.
계절의 순환과 자연의 이치를 아는 도심에 사는 독자들이라면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굳이 고생스럽게 왜 풀을 뽑는지 의아할 수 있다.
사실 내가 그랬다.
놀라운 우주의 질서는 오늘도 신실하게 작동되고 있으며
그 시스템 안에서 자연은 성장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스스로 그렇게 있는_자연이지.
인위적인 것들을 최소화하고 자연을 벗 삼아 자연에게 마당을 맡기는 그런
무식하고 용감한 마음으로 마당을 자연 순환 시스템에 맡겨 본 적이 있었다.
역시, 꽃은 시들고 풀은 마르고, 한 여름의 싱그런 영광은 꺾였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가.
이거 봐라. 제 아무리 초록이 짙고 푸르다 해도 시간 앞에 이 길 도리 없지.
그거 봐라. 네 아무리 팽팽한 청춘에 젊음 있다 해도 시간 앞에 장사 없다.
뭐. 그런.
그런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다음 해에 그 꺾이고 부서져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초록들은
자신을 찬바람 자신을 바짝 말려 동사를 피했고,
가벼워진 몸을 세찬 바람에 맡겨 사방팔방 최종병기를 지뢰처럼 심어 두었다.
죽음의 피딱지를 생명의 숨구멍으로 만들어 놨단 말이다.
역시 잡초는 무성해 지기 전에 뽑아 버려야 한다는 교훈이다.
내 마음속, 생각 속에 얽히고설킨 무성한 잡생각들은 그렇게 뽑아 버려야 한다.
"남의 머리채, 뽑아 본 적 있나요?"
"뽑아 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마당 빌려 드립니다. 고놈의 상판대기를 떠올리시며 다 잡아 뜯어버려요."
후드드득.
"가슴이 후련해 지실거예요."
계륵.
뽑아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찜찜하다.
이 집의 마당은 계륵 같다.
결국 하나.
가위 하나, 밀짚모자 하나, 돕는 아들 하나,
단순한 마음 하나.
미친년 머리채를 잡아 뽑듯이 뽑아 버리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마주하는
작은 새싹을 방관하다
큰 코 다친다.
뭐든지, 제 자리가 중요하다.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진멸당한다. @@
나의 제자리는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