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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왜 이리 꼬일까?' 느껴지면 딱 2가지만.

by 밍작가
우리 각각은 욕망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우리의 욕망을 억제하기도 하고, 분노를 길들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원하는 모든 것 중 아주 작은 부분밖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불행은 모든 사람에게 닥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소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의 목표를 세워 욕구를 억제하고, 분노를 제어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 '단념하고 견뎌내야'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다들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내 인생은 왜 이리 안 풀릴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생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욕망은 넘쳤고, 목표는 참 많았으며 름 인내도 잘하면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넘치는 욕망은 충족되지 못하고, 집중되지 못한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모여 분노를 만들어냈죠. 그 분노의 감정을 최대한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이 분노를 그릇이 커지기 위한 열로 삼고 싶었으니까요. 잘 살고자 발버둥 쳐봤지만, 욕심만큼 잘 살아지지 않았던 누군가가 겪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욕망과 꿈이 많은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고 공감할지도 모르니까요.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을 잘 관찰해 보면, 다들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내는 것 같아 보입니다. 물론 저도 그들의 눈에는 큰 걱정 없이 잘 사는 사람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들은 제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민과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저의 겉모습을 보면서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겠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요. 물론 겉모습은 문제없이 지냅니다. 표정도 의식적으로 밝게 웃으려고 하고, 깔끔하게 하고 다니려고도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에 비해 마음속은 복잡합니다. 고통과 공허 속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길거리에서 보는 그 사람들도 그런 하루하루를 보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고급 식당에서 좋은 옷을 입고 식사를 하고 있지만 그냥 사교적인 모임이 아닌 업무일부로 상대적 '을'이 되어 고통을 이겨내고 힘겹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죠. 평일에 백화점에서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고 쇼핑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서 부럼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은 평소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단편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타인의 고통의 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수준에 맞는 고통을 짊어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험상 사춘기가 지났을 즈음부터 우리는 크고 작은 고통들을 마음속에 품고 살기 시작합니다. 가 누구인지, 나의 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알 수 없는 이상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면서 말이죠.


저만 고통스러운 게 아닐 겁니다. 여러분만 고통스러운 게 아닐 겁니다. 하지만 '나만 고통스러울 거야'라는 생각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비교가 만들어내는 상대적인 좌절감까지 느끼게 하니까요.


인생은 고통입니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성인인 이상, 모두가 조금씩은 고통스러우니까요. 하지만 이 고통을 안고 그래도 우리는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고통을 이겨내고, 누군가는 고통과 함께하고, 누군가는 고통에 지배당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고통과 함께 살아갑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들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흔치 않기에 위대하, 그런 사람들은 보통 유명해지기 마련입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을 이뤘다는 것. 그리고 그 성공이 타인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곤 하니까요.


니체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았고, 젊은 시절부터 두통, 편두통, 위장장애에 시달렸죠. 게다가 정신적으로도 루 살로메에게 실연당하고, 절친이었던 바그너와도 갈등 끝에 결별을 하고 말죠. 이런 고통 속에서 그는 죽었지만 그의 글이 21세기까지도 살아있는 이유는 그의 글과 더해 고통을 이겨낸 아이콘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통을 승화시키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결국 비슷한 사람들이기에 고통을 느끼는 감정 또한 비슷하니까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비슷한 감정을 이겨낸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요.


통의 사람들이 못 산다는 말은 아닙니다. 보통의 사람들도 고통과 함께 열심히 살아갑니다. 때로는 이기기도 하고, 때로는 지기도 하면서 말이죠.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기기도 하고, 올해는 졌지만 내년에는 이기기도 합니다. 7번 고통스럽지만 3번 정도는 기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희망 삼아 또 열심히 살아갑니다. 승리에 대한 기쁨은 고통보다 더 기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요.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고 가끔 성공하는 사람들. 바로 평범한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꽤나 잘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가끔 고통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을 보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소식이 뉴스에 나오곤 하죠. 본인의 선택으로 운명을 마감하는 사람들, 이 고통을 타개하기 위해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 고통에 지배당해 결국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될 텐데,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될 텐데 말이죠. 해결되지 않고 결국 안고 살아야 하는 게 고통인데, 이 고통을 빨리 해결하려고 욕심부리다 보니 그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고통을 안고 사는 이 삶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까요?


단념하고 견뎌내야 합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부와 권력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쇼펜하우어는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단념하고 무엇을 견뎌내야 할까요? 우선 내가 노력해도 가지지 못할 것에 대해 단념해야 합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기에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물질을 단념해야 합니다. 즉, '내 것이 아닌 것'을 단념해야 합니다. 그리고 견뎌내야 할 것은 단 하나입니다. 진정 나의 것을 얻기 위해 따라오는 '고통'은 견뎌내야 합니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단념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견뎌내는 것은 인생의 집중을 만들어냅니다. 불필요한 고통을 만들지 않고, 필요한 고통에 집중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내면 진정 원하는 인생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필요한 것을 단념하고 필요한 것을 견뎌내며 살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순간의 고통을 견뎌내고, 사치하고 싶은 마음을 단념해야죠. 유명해지고 싶다면 유명해진 후에 구설수에 오를만한 일들을 단념하고, 유명해지는 과정 속에 오는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고요. 건강해지고 싶다면 쾌락적이지만 좋지 않은 것들을 단념하고 하루하루 규칙적인 생활을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받아도 될 분야를 내가 결정하세요. 그리고 내가 결정한 그 고통에 대해 견뎌낸다면 고통의 낭비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고통에 아파하지 않으며, 내 인생만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고통이니까요. 그 누구도 지시하지 않은 '내가' 선택한 고통이고, 견뎌낼 자신이 있기에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요.


진짜 여러분의 인생을 위해 '단념하고 견뎌내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고통을 감수하면서 진정한 내면 그릇이 커지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정한 고통을 이겨내는 건 예상치 못한 고통을 이겨내는 것보단 견딜만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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